생김새와는 다른 수분 공급 최고의 열매채소
오이와 친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이는 수분 공급에 좋은 줄만 알았다. 산에 갈 때 가져가는 것이 오이였다. 오이는 별 맛도 없었다. 그저 밍밍한 맛이었다. 피클 정도 돼야 먹을 만했다. 오이지는 짭조름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여성들은 오이를 얼굴로 먹었다. 너도나도 얼굴에 붙였다.
오이는 생김새도 제각각이었다. 불균형한 길이에 균형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한쪽은 가늘고 한쪽은 굵다. 피부는 우둘투둘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촉감은 물론이고 금방 물러지기 십상이고 보관하기도 좋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가지는 그래도 오동통하니 귀여운 데라도 있지, 정말 오이는 피죽도 못 먹은 빈약 그 자체였다.
그러던 오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오이와 친해진 건 잡채부터였다. 느끼한 잡채를 훌륭히 보완해주었다. 오이 고유의 색감도 한몫했다. 특히 김밥에는 오이가 없어선 안 된다. 오이의 식감이 무른 김밥을 보완한다. 초에 절인 오이면 더욱 훌륭하다. 단무지 꺼낸 통에다 오이를 넣어 잠깐 절여 사용하는 이유다.
오이가 이젠 오이소박이로 진출했다. 평소에 내게 오이소박이는 없었다. 오이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이소박이를 보긴 했지만 먹는 데는 인색했다. 요리를 하면서 오이소박이가 달라졌다. 요리는 관점을 변화시킨다. 사물의 가치가 새롭게 매겨진다. 요리하는 자가 세상을 넓게 볼 수밖에 없다. 요리를 하지 못하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살 수밖에 없다. 오이 하나로도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오이는 다이어트 시대에 특히 뛰어나다. 아마도 칼로리가 가장 낮은 식재료가 아닐까 싶다. 해독은 물론 식이섬유가 뛰어나 변비 예방에도 좋다. 오이냉국 한 그릇이면 더운 여름철 하루가 겁나지 않다. 오이소박이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아삭아삭, 옆에 누군가 먹는 소리에 반하는 것이 오이소박이다.
오이를 깨끗이 세척해 3~4등분 후 열십자로 칼집을 낸다. 바닥에 나무젓가락 사이로 오이를 놓고 칼집을 넣어주면 일정한 깊이로 낼 수 있다. 굵은소금을 골고루 뿌려 뒤집어가며 30~60분 정도 절인다. 간을 배게 하고 식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부추는 길게, 쪽파와 양파는 잘게 썰어 소스와 혼합한다. 소스는 찹쌀풀에 배를 갈아 넣고 다진마늘, 새우젓, 고춧가루, 생강가루, 설탕을 넣고 섞어 간을 보고 추가 보완한다. 모두 버무린 후 오이에 속을 박아(집어) 넣으면 완성. 하루 후면 곧바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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