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를 창조하는 일
주인공은 주제다
이번 섹션에서는 좀 딱딱하지만 스토리를 작법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스토리 작법의 과정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물, 사건, 배경을 꼽는다.
그렇다면 이 셋 중에 가장 먼저 고민하고 설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 사건! 휘몰아치는 사건들이 정신 못 차리게 펼쳐지면서 온몸의 감각을 짜릿하게 만드는 것.
때로는 너무 엽기적이어서 '어쩌면 이렇게까지 끔찍한 사건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지?' 싶은
자극적인 사건들이 넘쳐난다.
배경은 어떠한가?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완벽한 판타지 세계관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확장시키고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아주 멋진 통로가 된다. 정말 잘 짜인 배경은 실제로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그런데 사건과 배경에 인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시선을 사로잡는 사건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인물들의 결핍과 거리가 먼 너무 큰 사건들만 빵빵
터진다면 인물은 사건에 가려지고 그 사간에 휘둘리면서 주체적인 길을 달려갈 수 없게 된다.
해리포터가 매력 있는 것은 사건을 헤쳐나가는 힘이 인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해리포터가 가지고 있는 결핍과 트라우마는 내면에서 갈등을 만들고 앞으로 나갈지 포기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럴 때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며 해리포터를 응원하게 되는데 작가가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의 응원을 받는 주인공 즉, 사건이나 배경에 가려진 주인공이 아니라 사건 앞에서
갈등하고 맞서고 뛰어넘는 가운데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기필코 결핍과 트라우마를 넘어서 성장하는 주인공을 만드는 것 차제가 주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의 내면의 변화를 위해 사건과 배경이 존재하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모든 사건들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이유가 있는 갈등을 만들어야 하고 배경은 주인공을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가는 문화적, 지리적, 사회적 환경이기에 오롯이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픽션이나 현실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주인공 속에 내가 있다
주인공을 설정하는 과정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자.
'라솔서재'에서 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소설 속 주인공을 이야기할 때 불쑥불쑥 이름을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그 상황을 본다면 주변 친구나 실제 동생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친근함이 대단하다.
이름을 지어주는 건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다. 나이는 물론이고 가족관계, 친구관계, 사는 곳, 사소한 습관, 강점, 약점, 알레르기, 성격, 키, 머리모양, 피부색, 쌍꺼풀의 유무, 안경을 썼는지, 식습관, 이 모든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결핍과 트라우마 등등 마치 덕질을 하듯이 주인공을 설정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알고 싶고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인공은 이렇듯 작가의 다정하고 간절한 시각으로 설정된다. 그러니 주인공 속에는 아이들의 바람이 살아 숨 쉴 수밖에 없다. 때로는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 혹은 너무나 간절했지만 할 수 없이 꾹꾹 눌러 담고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주인공에게 투영한다. 끊임없이 '나'라면을 고민한다는 증거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싶은 의도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주인공은 그랬으면 좋겠다며 설정하는 아이들도 있다.
비단 아직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품고 있는 마음도 이와 같다. 창작은 맘껏 상상해서 쓸 수 있으니까 작가가 완전히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인물을 만들 때 작가는 완전하게 인물과 분리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인물에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들은 스토리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기
창작의 꽃은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주인공이 넘어지면 작가도 넘어지고,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면 작가도 같이 일어선다. 이 숱한 넘어짐 속에서 꼬마 작가들의 무릎은 딱지가 가실 날이 없지만 하나의 상처가 아물 때쯤 한 뼘씩 단단하게 마음이 자라는 아이들을 본다. 이런 감정쯤이야 독서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지 않냐며 유난스럽다는 사람도 종종 봤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느껴지는 뉘앙스라는 게 있지 않은가. '굳이'라는 말주머니가 머리 위에 동동 떠다니는 게 보이는 것 같다. 독자는 어디까지나 제삼자다. 한 다리 건너 있다는 뜻이다. 간접경험을 통해서 작가가 펼쳐 놓은 의도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의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자신의 일부를 떼어 넣는 사람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인공은 결국 내가 되고 이야기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몇 개월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되는 된다. 그러니 읽는 자로 주인공을 경험하는 것과 작가로 주인공을 살아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이다. 꼬마 작가들은 창작으로 훈련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현실의 나도 키워간다.
다른 친구들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먼저라서 늘 자기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던 10살 꼬마 작가가 있었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주인공과 함께 자라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며 창작 수업에 대한 더 큰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쌓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값진 방향성!
이렇듯 '라솔서재'를 운영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기쁨은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다. 가끔씩 5회 정도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외부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이다.
처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라솔서재'를 오픈하게 되었을 때 마치 망망대해에 표류한 뗏목 위의 타들어가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매달 탈탈 털어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지만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의미 있게 성장했던 아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새로운 장소를 정하고 다시 달리기 선상에 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잠시라도 아이들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는 창작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라솔서재'는 오늘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