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해도 괜찮아, 창작이니까!

창작,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

by 라솔





축구소녀의 복수혈전




하루는 빛작가가 라솔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씩씩거렸다.

"선생님! 오늘은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야?"

"아시죠? 제가 축구 동아리인 거."

"알지. 왜? 경기가 잘 안 풀렸어?"

"5학년 오빠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콩처럼 귀여운 3학년 여자아이가 5학년 축구 동아리 오빠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저런, 빛작가 오늘 단단히 뿔났네. 어쩔까? 그 오빠들?"

"제가 축구동아리 이야기를 끝내면 꼭 보여주고 말겠어요."

"오늘 에피소드 하나 늘겠는데?"

"아주, 특별판을 만들 거예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꽉 쥔 연필이 부러질듯한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뭐라고 쓰는지 30분 넘게 찍소리도 않고 한참을 쓰던 아이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드리웠다. 마치 복수를 끝낸 승자의 미소랄까?

"복수는 깔끔하게 끝내셨습니까. 작가님?"

"네!"

옆에 있던 몇몇 글동무들이 몰려들어 서로 보자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다른 아이들도 킥킥거리며

웃자 빛 작가는 세상 만족한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일이 있은 후 2주 정도 지났을 쯤이었나? 오빠들이 자기에게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며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하는데, 당당한 그녀의 귀여움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라솔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감정을 흘려보내는 일




이런 경험은 비단 아이들과의 글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들도 작가고 나도 작가니 이심전심이겠지. 20년 전쯤 둘째가 태어날 무렵 첫째는 한국 나이로 세 살이었다. 유독 눈치도 빠르고 성숙했던 큰 아이는 내가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울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워낙 순했던 아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혼자 놀게 두고 일을 했던 것이 결국 곪아서 터진 셈이었다.

"선영아, 그만 울어. 엄마 일해야 되는데 착하지?"

"시어! 컨푸터 시어!"

컴퓨터에게 뺏기고 동생에게 뺏긴 엄마. 그때부터였다. 밤샘 작업의 시작.

결혼 전, 친정엄마는 잠 많은 날 보고 잠순이라며 시집가서 애는 어떻게 키우나 늘 걱정했다. 뭐, 닥치면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 가는 일이야 당연하겠지만 나의 본성을 거슬러 엄마라는 자리에 적응하는 고통보다 더 힘겨웠던 건 '그래, 애 키우면서 글 쓰는 게 쉽진 않지.'라며 이해하는 듯 안쓰러워하는 시선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그쯤 해, 작가? 다 의미 없어.'라고 들렸다. 난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세 아이를 돌봤던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내 꿈을 집어삼킨 최악의 순간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독박육아에 글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을 때, 내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그 모든 감정을 다독여줬다. 결국, '아이들'은 '글 쓰는 나'를 지켜줬고 '글쓰기'는 그 시절을 버티게 했다.

나는 지금도 내 이야기 곳곳에 남아있는 캐릭터들을 볼 때마다 함께 고군분투했던 선연한 전후애를 느끼곤 한다.





인물을 만들어가는 것의 이로움




인생에서 느끼는 감정을 보통 '희로애락'이라고 일축할 수 있는데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조금 더 섬세하게 펼쳐보면 아주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기쁨의 끝과 분노의 시작이 닿아 있는 순간을 경험하고 분노의 끝과 슬픔의 시작이 닿아 있는 그 지점에서 상실을 느낀다. 그 어떤 감정도 혼자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희로애락이라는 스펙트럼 그 어딘가에 잠깐씩 머무르며 산다.

소설 속 캐릭터들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감정의 색 그 어딘가에서 허우적거리며 이야기를 살아낸다. 그렇다면 캐릭터를 만드는 작가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파도를 함께 경험하게 되는 걸까?

작가는 캐릭터와 함께 감정의 넘지 않고서는 독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척'은 늘 들키고 만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공감하는지 대충 고개만 끄덕이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처럼 독자들도 작가가 캐릭터를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한순간도 창조된 캐릭터를 종이에 갇힌 인물도 대해서는 안 된다.

감정의 파도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들도 표현이 서툴 뿐 모두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낀다. 사실, 어른도 모두가 표현에 능한 건 아닐 테니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과 어른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창작하는 아이들은 머릿속에 사는 자신이 만든 인물과 동고동락하며 한 달 혹은 몇 달에 걸쳐 감정을 공유하고 문장을 통해 표현해 낸다. 감정 몰입을 통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성장한 나를 경험한다. 주인공을 펑펑 울려도, 좌절에 빠뜨려도, 분노에 사로잡힌 악마로 변화시켜도 이야기 속에서는 안전하다. 난 아이들에게 말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라고.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작가의 감정인지 주인공의 감정인지. 그러니 창작이라는 감정의 바다에서 마음껏 파도 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신이 허락한 기적임에 틀림없는 일이 아닌가. 창작 안에서 날마다 기적을 맛보는 아이들은 절대로 스스로를 포기하는 법이 없다. 결국 해낼 거라는 걸 여러 번 경험했으니 말이다. 이 믿음이 내가 아이들과 함꼐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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