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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선 Oct 01. 2022

익숙해지지 않는 인도의 향기

인도 속으로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특유의 냄새다. 10시간을 날아 인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매캐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한국이 아닌 다른 땅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인도를 떠올리면 항상 특유의 냄새가 떠오른다. 그리고서야 인도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28살까지 나는 비행기를 단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남들 다 가는 제주도도 못 가봤다. 그런 내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곳이 바로 인도였다.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내가 2년 동안 인도에 간다고 하니 가족들 대부분이 인천공항으로 배웅을 나왔다. 엄마는 마치 군대를 다시 보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던 나라에 돈 벌러 가는데 왜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입대할 때보다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못 하고,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고, 해외도 나가본 적 없던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인도 주재원으로 나가 앞으로 2년간은 꼬박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식구들을 보내고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탑승 대기장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대한민국을 벗어난 곳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벗어난 그 느낌은 참 묘했다. 내가 진짜 해외에 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인도로 가는 것이다. 신비의 땅 인도로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무거운 비행기가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내려다보는 것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항상 밑에서 올려다보던 구름바다가 바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인류가 만든 것 중에 비행기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 있을까? 내가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행의 기쁨을 누리던 중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이 맛없다는 얘기는 모두 거짓이었다. 단지 양이 조금 적었을 뿐이다. 하나 더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다. 한참이 지나 많은 비행기를 타고 알게 된 것은 그래도 된다는 것이다. 남는 기내식이 있으면 주기도 하고, 없으면 빵 등을 한두 개 더 주기도 한다.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끝나고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의 땅에 발을 디뎠다. 한국인보다 외국 사람이 더 많은 환경이 너무도 낯설었다. 긴장과 설렘 속에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한밤중이었지만 한여름보다 더웠다. 공항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열기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매캐한 남새가 코를 찔렀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맡았던 최루탄 냄새가 떠올랐다. 어른들이 데모한 다음 날이면, 초등학교 운동장 모래에 최루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축구로도 할라치면 모래 속에서 최루탄 냄새가 올라왔었다. 30도가 넘는 온도에 매캐한 냄새가 섞여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아, 여기가 인도구나. 이 냄새가 인도 냄새구나.’ 비행기에서 은근히 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는 바로 인도의 냄새였다. 그리고 그 냄새는 내가 인도에 있는 내내 어디를 가든 쫓아다녔다. 조금씩 적응되고 무뎌졌지만, 가끔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바지를 사러 간 적이 있다. ‘리바이스’ 브랜드가 한국보다 훨씬 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서 보니 가격도 반값이고 괜찮아 보였다. 맘에 드는 바지를 들고 탈의실로 갔다. 모든 옷가게의 탈의실이 그렇듯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인도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술병을 깨뜨려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인도의 냄새가 진동했다. ‘참고 입자. 잠깐이면 되잖아.’ 스스로를 달래며 문을 닫았다. 그러나 바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잠깐의 시간을 참지 못할 정도로 냄새는 강력했다. 결국, 리바이스는 포기하고 돌아왔다.


왜 냄새가 날까?

처음에는 인도는 냄새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풀렸다. 인도 음식을 먹어보니, 인도 냄새는 바로 음식 냄새라는 걸 알았다. 인도를 전 세계에 알리고, 전쟁을 일으킨 향신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도록 만든 향신료가 인도 냄새의 주범이었다.

우리가 ‘카레’라고 부르는 인도 음식 ‘커리’는 한국의 찌개처럼 인도의 대표적인 메인 요리이다. 보통 5~6개 이상의 향신료가 들어가고, 요리에 따라 10가지 넘는 향신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다양한 향신료가 섞이면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인도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든다. 특유의 음식의 향은 음식을 먹은 사람에게서도 나고, 공기 중에서도 난다. 그리고 리바이스의 탈의실에서도 난다. 향신료의 향이 인도의 향인 것이다. 인도 어디를 가든 인도 향신료의 독특한 향을 맡을 수 있다. 독특하다는 것 말고는 표현하기 힘든 그런 향이 인도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은 인도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인도를 생각하면 항상 인도 향신료의 향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한국인의 마늘 냄새

‘한국 사람은 김치 냄새가 난다.’ 이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미국인이 한국인을 놀리려고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한국 사람에게서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난다는 것은 거짓말인 줄로 알았다.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김치 냄새나는 사람, 마늘 냄새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도에 있는 동안 한국 사람 몸에서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정말 강하게 난다는 것을 느꼈다.

수랏이라는 지역에 한 달 넘게 있었던 적이 있다.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인은 거의 오지 않는 곳이다. 한 달간 있으면서 한국 사람을 만난 건 단 한 번이 전부였다. 음식도 당연히 인도 음식만 먹었다. 한 달여간의 출장이 끝나고 델리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사람들이 오랜만에 인사했다. 그런데 인사하는 한국인마다 마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김치 냄새가 났다. 그제야 한국인에게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한두 명이 아니고 모두 그랬다. 단 한 달 동안 한국 음식을 먹지 않았을 뿐인데 한국인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잠깐의 시간만으로 사람의 냄새를 느낄 수 있다면, 몇 개월 몇 년간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훨씬 심하게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된장찌개와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특히 쌀밥이 너무 맛있었다. 배가 터지도록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다시 한국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와 김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서양사람들도 특유의 냄새가 있다. 유럽은 숙성한 햄과 삭힌 치즈의 향이 상당히 강하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에게서는 치즈의 냄새가 난다. 결국, 냄새는 그 사람이 주로 먹는 음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주로 먹는 음식에 따라 사람의 냄새가 결정된다. 인도와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라 미국 사람, 서양사람, 동남아 사람 모두 자신이 주로 먹는 음식의 냄새가 몸에서 난다.


나는 어떤 향기가 나는 사람일까?

음식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서는 그 사람만의 향기가 있다. 채취는 먹는 것으로 인해서 바뀌지만, 사람의 향기는 주로 생각하는 것, 주로 행동하는 것, 주로 말하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과 행동과 말이 사람의 메인 요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습관이라고 한다.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과 행동과 말이 사람의 향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향기는 채취가 되어 자연히 발산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히 알게 된다. 향기는 꾸미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계속해서 덧입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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