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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선 Oct 13. 2022

사이드 미러는 옵션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왜 사이드 미러를 접고 다니는가?

사이드미러는 접어야 한다

인도는 교통이 혼잡하기로 유명하다. 대도시는 하나같이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차선과 신호를 지키지도 않는다. 심지어 역주행까지 빈번히 일어난다. 당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사이드미러를 접고 다니는 것이었다. 심지어 일부 차량은 사이드미러가 없기도 했다. 운전석 쪽 사이드미러는 기본이지만 일부 차량은 조수석 쪽 사이드미러가 옵션 구매인 차도 있었다. 한동안 인도에서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커스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고 없이 운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자리만 있으면 끼어드는 차를 보면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인도인은 사이드미러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뒤차가 추월할 때는 지나간다는 표시로 경적을 울리기 때문이다. 경적 소리를 들은 운전자는 뒤에서 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선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드미러가 필요 없다. 우리 상식에서는 이해되지 않지만, 인도에서는 당연한 운전 방식이다. 당연히 방향지시등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경적이 울리지 않으면 옆 차선으로 움직이면 되고, 뒤에서 추월하는 차가 있으면 알아서 경적을 울리기 때문이다. 주말에 장을 보러 가거나 놀러 갈 일이 있으면 직접 운전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편했다. 한국처럼 뒤에서 오는 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음대로 차선을 바꾸면 된다. 차선을 바꾸려다 경적 소리가 들리면 차를 한 대 보내고 나서 변경하면 된다. 뒤 차가 오는 것을 볼 필요가 없으니 앞만 보면 운전할 수 있었다.     


어느 도로든 경적 소리로 신호를 보내니 항상 시끄럽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굳이 사이드미러를 접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열어놓고 다니면 가끔이라도 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현지인에게 사이드미러 접는 이유를 물어봤다.     


“사이드미러 열어놓고 다니면 뒤차 오는 것도 보이고 좀 더 편하지 않아? 왜 접는 거야?”

현지인은 이유를 설명해줬다. 

“사이드미러를 열어놓으면 옆 차랑 부닥쳐서 안 돼”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인도인들은 차선은 지키지 않는다. 3차선 도로라도 5대의 차가 다닌 곤 한다. 아주 좁은 틈만 있으면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조금만 더 큰 틈이 있으면 릭샤(오토바이 개조 택시)가 지나간다. 그보다 조금 더 넓은 틈이 있으면 차가 끼어든다. 차선은 대부분 그어져 있지도 않고, 그어져 있다고 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가끔 역주행 차들도 있고, 건널목이 있기는 하지만 무단횡단이 일상화되어 있다. 보지도 않는 사이드미러를 열어놓으면 옆에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릭샤에 부닥칠 수 있어서 접어놓은 것이다.


인도에서는 사이드미러 때문에 사고가 잦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사이드미러를 접는 것이 사고를 유발하고, 소음도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직접적인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사이드미러가 의무 장착으로 바뀌었다. 자동차 제조사는 사이드미러를 옵션이 아닌 기본 장착 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이드미러를 접고 다니는 차량을 단속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사이드미러를 열고 다니는 차량이 더 많다. 아직도 일부는 접고 다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인도는 변해가고 있다.     


최고의 가성비 릭샤

교통의 복잡한 인도에서 릭샤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릭샤는 앞바퀴는 1개이고 뒷바퀴는 2개인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택시를 말한다.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에 있으며 국가마다 이름이 다르다. 승객이 타는 자리가 보통 1열로 되어있고, 가끔 2열로 된 것도 있다. 보통 승객 2명에서 3명을 태울 수 있다. 차 문이 없는 대신 천막이 있어, 비 오는 날이면 천막을 닫아서 비를 피할 수 있다. 오토바이를 개조했기에 가볍고, 엔진이 작아 연비가 좋다. 폭이 좁아서 차들 사이의 작은 틈으로도 신기할 정도로 잘 빠져나간다. 자동차 택시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릭샤를 선호한다. 하지만 늦은 밤 혼자 타고 가다가 사고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늦은 밤에 릭샤를 탄다면 이상한 길로 가지는 않는지, 혹시 운전사가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지 경계하면서 타야 한다. 내가 직접 사고 난 적은 없지만, 가끔 사고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한 친구는 돈 없이 릭샤를 타고 와서 가방을 릭샤에 두고 돈을 가지러 갔다가 오니, 릭샤가 사라져 가방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자가용 오토바이

전 가족이 오토바이 하나를 타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자동차는 서민이 사기에는 너무 비싸기에 오토바이가 한 가정의 자가용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집안의 자가용이기에 부모와 아이 들까지 한 오토바이에 타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이들이 헬멧도 안 쓰고 타는 어른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아찔하다. 그리고 실제로 교통사고도 잦아서 아이들이 다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내가 탄 차량과 오토바이가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오토바이 운전사는 길바닥을 뒹굴었다.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내가 탄 차량의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운전사에게로 가더니 한참을 얘기했다. 당연히 병원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빗나갔다. 피가 흐르는 상처 위에 엔진 오일을 발라주는 것이었다. 시커먼 엔진 오일을 말이다. 그러더니 차로 들어와 운전하고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운전사에게 병원에 가지 않냐고 물어보니 엔진 오일 발랐으니 피가 멎을 거라고 했다. 당연히 시커먼 엔진 오일을 발랐으니 피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 더러운 엔진 오일을 바르면 염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지는 않았다. 그냥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용히 묻어두었다. 내 차의 운전사와 오토바이의 운전사는 그렇게 엔진 오일로 사고를 원만히 해결하고 갈 길을 갔다.     


한국의 80년대에도

한국인들은 이런 교통문화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하며 교통문화뿐만이 아니라 국민성까지 낮춰보고 한탄하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얘기를 하는 한국인을 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도 80년대에도 운전 중 경적을 울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도로가 있으면 으레 경적이 울렸다. 사회가 발전하고 교통문화가 발전하면서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이 운전문화로 자리 잡았을 뿐이다. 경적뿐만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이 확성기를 통해서 물건을 홍보하는 모습도 일반적이었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계란 장수는 골목골목을 다니며 확성기로 계란이 왔다고 소리치고 다녔다. 밤이 되면 ‘찹쌀떡, 메밀묵’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큰 소리로 얘기하는지 마치 성악을 배운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간 일을 잊고, 과거의 모습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그랬을지라도 그 모습이 사라지면, 마치 자신은 그랬던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한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은 그랬던 적이 없었는지,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우리가 비난하는 모습이 어쩌면 나의 과거 또는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단지 오래된 기억으로 내가 마치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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