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벽돌집에 살고 싶어요
야자나무 잎 팝니다
인도에서 길을 가다 보면 야자나무 잎을 한가득 싣고 지나가는 손수레를 만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어디에 쓰려는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사람에게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에는 빈부격차가 정말 심하다. 한국의 부자보다 잘사는 사람도 정말 많고, 못사는 사람도 정말 많다. 대도시의 큰 길가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빈민가가 나온다. 그리고 빈민가 사람들은 집을 살 돈도 없기에 바람이라도 막을 수 있는 무언가로 집을 짓고 산다. 그 재료 중 가장 유용한 것이 야자나무 잎이다. 야자나무 잎을 반으로 잘라 얽히게 엮으면 바람을 막아주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 또한, 지붕에 깔면 자연스럽게 물길을 만들어 빗물이 잘 빠진다. 마치 우리나라에는 초가집이 있듯이 인도에는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이 있다. 이런 집은 쉽고 싸게 지을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보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자나무 잎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벽돌집에 살고 싶어요
내가 델리에 머무르는 동안 현지 ‘에이전트 Agent’가 구해준 운전사도 그런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라 말도 다르고,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은근히 무시했다. ‘카스트 Caste’나 ‘자티 Jati’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계급도 낮아 보였다. 그 운전사는 한국인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해갔다. 푹신한 소파에도 앉아보고,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도 먹어보고, 컴퓨터로 일하는 모습도 보면서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조금씩 갖고 싶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라디오였다. 당시 TATA의 차량에는 라디오가 옵션이었다. 그리고 내가 타던 차량은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인도 라디오로 들을 일이 없으니 필요가 없었다. 운전사는 언젠가부터 크리켓 경기를 듣고 싶다면서 라디오를 설치해달라고 했다. 우리 회사의 직원도 아니고, 에이전트 Agent 소속이면서 나에게 얘기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얘기하지 말고 너의 사장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얘기했다. 나는 다시 얘기했다. “차량도 내 차가 아니다. 너희 사장이 임대한 것이다. 너희 사장에게 얘기해라.” 하지만 여전히 매일같이 라디오를 설치해달라고 했다. 매일 같은 얘기를 듣는 것도 힘들고, 그 정도는 정당한 요구인 것 같아서 에이전트 사장에게 얘기해서 라디오를 설치해주었다. 운전사는 그 라디오로 크리켓 (야구 비슷한 게임)을 매일 들었다. 인도에서 크리켓은 거의 유일한 국민 스포츠이다. 라디오가 생기자, 라디오 사달라는 얘기를 안 들어서 좋았다. 하지만 운전하는 내내 크리켓 방송을 들어서 오히려 귀가 더 아프기는 했다.
한참이 지났다. 이번에는 집에 TV가 없다며, TV 임대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인도에서는 TV도 임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정수기를 임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가전제품도 임대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라디오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아서 좋았건만, 이제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매일같이 TV 임대할 돈 달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만 좀 하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에이전트 사장에게도 매일 졸랐다고 한다. 결국, 에이전트 사장은 운전사 월급을 조금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운전사는 TV를 임대했다. 이제 다른 것은 바랄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한참이 지나, 이번에는 벽돌 살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왜 자꾸만 나에게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졸라댔다. 일하러 가기 전에 졸라대고, 일하고 오면 졸라대고, 운전하다 졸라대고, 집에 오면 졸라댔다.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협상했다. ‘나는 돈을 못 준다. 에이전트 사장에게 가서 매일 얘기해라. 그러면 내가 나중에 사장을 만나서 돈 주라고 얘기하겠다.’ 그때부터 돈 달라는 얘기는 없었다. 대신 오늘도 에이전트 사장에게 가서 얘기했다는 말로 바뀌었다. 그 말은 그래도 들을만했다. 나는 잘했다고 해줬다. 나도 며칠 후에 사장 만나서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매일 사장에게 그렇게 얘기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에이전트 사장을 만나서 얘기했다. “벽돌 사달라는 얘기 못 듣겠습니다. 돈을 빌려주던지, 아니면 운전사를 바꿔주던지 뭐라도 해주세요.” 보다 못한 에이전트 사장은 결국 벽돌 살 돈을 가불 해줬다. 정확한 금액은 몇 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운전사는 벽돌을 샀고, 거의 한 달 동안 벽돌을 쌓아 올려 벽돌집을 만들었다. 나중에 놀러 오라며 자랑까지 했다.
욕심은 비교에서 시작한다
이 친구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욕심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집도 야자나무 집에 살고, 옆집, 뒷집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 모두 야자나무 집에서 사는데, 한국인이 타는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면, 벽돌집을 짓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었을까? 옆집이나 앞집 사람과 비슷한 꿈을 꾸고 주위 사람처럼 살지 않았을까?
인도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지역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은 신분 상승 욕구가 높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하층민은 신분 상승 욕구가 높지 않다. 자신의 삶이, 계급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특히 카스트 제도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인도에서 삶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은 매일 접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매일 접하는 환경이 비슷하다면 꿈도 비슷한 꿈을 꾸게 된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운전사가 다른 지역에서 와서 ‘힌디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힌디어책과 영어책을 사주고 공부를 하라고 했다. 매일 책을 얼마나 봤는지 확인했고, 영어도 조금씩 가르쳐줬다. 나날이 변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힌디어도 제법 하기 시작했고, 영어도 곧잘 했다. 나중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 책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달라고 해서 줬다고 혼을 내기는 했다. 그리고 다른 영어책을 하나 사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힌디어도 꽤 잘하고, 특히 영어가 많이 늘었다. 영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환경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무엇을 보고 배우냐에 따라 상상할 수 있는 꿈이 바뀌고 목표가 바뀐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 매일 접하는 환경이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면, 꿈꾸는 삶도 지금과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주로 생활하는 환경이 야자나무로 만든 집인 사람과, 번듯한 사무실인 사람과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이다.
몇 해 전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북콘서트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작가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작가를 만날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 거의 매주, 때로는 한 주에 2회 이상 북콘서트에 다녔다. 그리고 결국 나도 작가가 되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우선 환경을 먼저 바꿔보자. 야자나무로 만든 집에서 나오면, 야자나무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은 꿈을 그리는 밑바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