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적으로 중얼거리고 돌아눕기도 전에 아이가 파고든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직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눈꺼풀을 움직여 보려다 그만 힘을 뺀다. 둘째까지 깨우지 않으려면 일단 울음이 커지기 전에 재워야지..토닥이는 내 손목의 움직임이 점점 어둠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 몇 년을 반복했는지 모를 깊은 우물 같은 시간
주말부부를 끝낸 것도 다시 시작했던 일을 그만둔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지만, 밤새 얕은 잠을 자는 아이 덕분에 매일 깨어있던 새벽은 문득 공허했고 자주 화도 났다. 맑아도 비가 와도 내 모든 날씨는 아이를 향해 있었으나 워커홀릭 수준이었던 내 열정이 꺼진 부분의 상실은 또 다른 이야기.
그러다가아이 덕분에 빠져든 그림책 덕분에 첫 온라인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북마미로 활활 불사르는 몇 년을 보낸 시간. 그림책을 통해 다시 내 책을 찾아 읽고, 영어 그림책들을 수집하다 내 원서 읽기 스터디를 하고, 수없이 많은 글을 토해내는 확장이 일어났다. 북마미 폐인이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옳을 만큼, 잠도 줄여가며 탐닉했던 그림책과 인연들이 나를 채워주었다.
빈 마음에 꽉꽉 눌러 담은 밀도 높은 애정은, 그림책을 타고 아이에게로 흘렀고 힘든 유아기 초보 엄마를 안정 궤도에 올려주는 역할을 함께 해 주었던가. 어쩌면 그림책 육아라는 말은 아이들보다, 초보 엄마에게 거름이 되어 나를 키워준표현이라 해야 더 적확하겠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잘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점점 더 예리하게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그 예리한 시선은 범위를 좁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각도의 시선을 열어주고 더 많은 곳에 관심을 갖게 해 줌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였기에, 아이들에게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시너지를 알려주는 긍정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시범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라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함께 하는 것. 어쩌면 어렸을 때만 가능한 무엇을 공유할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아이와 부딪히는 파열음이 생길 때도, 그나마 단단한 줄을 잡고 있는 기분이랄까.
"엄마랑 이렇게 얘기하면 꼭 친구나 언니 같아."
내가 힘든 순간 다가와, 우리가 함께 읽은 그림책을 빗대어 위로해 주는 딸.
엄마가 읽어주며 손으로 당기고,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니라 나란히 손잡고 같이 걷고 있음을 느낄 때 벅찬 회오리가 일어 온다. 앞에서 리드하는 엄마, 뒤에서 코칭하는 엄마도 내 역할이지만 아이들 옆에 서 있을 때 행복지수 UP!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너희들 보폭과 닮은 옆자리.
딱 지금처럼 옆에서 나란히 걷는 엄마.
우리도 좋아하는 사이, 서로 잘 아는 사이.
그러니이렇게 나란히 걷다 보면 예리함과 다양함이 공존하는 에너지가 나올 거야. 그렇지?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 것인가, 또 다른 면으로 고민하게 될 시점에 지금 이 글을 기억할 수 있길 바라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