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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Jan 03. 2023

나만의 내면아이 회복법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마음으로.

아무리 회복한다고 해도 상처를 지울 수는 없다. 회복이 되며 새로운 무늬만을 그릴뿐이다. 하지만 회복은 중요하다.


회복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해야 일어난다. 실질적인 경험이 회복을 일으킨다.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책과 이론을 접한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의 경험이 받쳐주지 않으면 곧 이내 행복을 좇으며 상처로부터 달아나는 우리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상처가 있다면 반드시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일으킨다. 자연의 섭리이니까.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탓하거나 상황을 되짚어본다.



나의 내면아이는 매번 거절을 당했고 과중한 책임을 지며 살았다. 해외 바이어로 바쁘신 아빠와 선생님을 하며 바쁜 엄마에게 나의 부탁은 짐이었다. 가끔 또래보다 더 예쁜 옷과 가방을 가지곤 했는데 그건 나의 선택이라기보다 엄마의 욕망일 때가 많았으며 얼리어 답터인 아빠의 선물일 때가 많았다. 유치하고 소박했던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리스트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내가 배우고 싶던 플루트도 엄마가 플루트리스트에게 반한 몇 년 뒤에나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엉뚱하고 고집스럽게 태어난 동생을 돌보며 자라야 했던 나는 늘 뒤에 서서 동생을 챙겨야 했다. 또래보다 살림을 좀 잘했던 나는 엄마 동료 선생님들의 딸이 우리 집에 모여 점심을 먹는 것을 챙겨주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딸이라고 가장 모자란 친구를 짝지로 지어주곤 했다. 나는 4,5번째 줄에 앉은키 큰 남자애들이 참 내 스타일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어릴 때 운동신경이 없어 집에서 자주 놀았다. 걷거나 뛰면 자주 넘어져서 운동이라고 해봤자 방 안에서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춤추는 게 전부였다. 나의 결핍은 지나친 책임감과, 아이답지 못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온몸으로 놀았던 경험이 늘 부족하다 생각이 되었다. 마음껏 더 뻗어내고 뛰고 구르고 싶었다. 책임감과 최대한 멀어질 수 있도록 관계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관계에서 멀어지면 나와의 관계는 밀접해질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발리에서 실컷 서핑하고 요가하고 춤추고, 많이 벗고, 많이 자고, 선택적 고독 안에서 나와 온전히 있어주면서 내면아이가 일부분 치유된 것 같았다. 3개월 만에 나는 충분하고 충만해서 사람과 에너지를 나누고 싶었다. 외로움과는 달랐다.


그리고 발리에서 돌아온 후에는 혼자 살면서 고양이를 입양했다. 나만의 첫 고양이였다. 밥을 먹지 못해서 내 손등에 습식 사료를 얹어 젖처럼 먹여줘야 했고, 이빨이 날 때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서 나를 마구 물어도 어쩔 수 없었다. 두부모래가 맞지 않아 몇 번이고 침대에 오줌을 누어 눈꺼풀을 비비며 빨래방에 여러 번 갔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화가 안 났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주변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때만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무언가 기르면서 느꼈다. 내 안에 모성애 같은 것. 나는 엄마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내가 특출 나서가 아니라 나는 여자라서. 신체적 특징 앞에 굴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정이기도 했다. 사실은 파혼하면서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기르고 양육하는 게 참 좋았다. 고양이와 사람은 다르지만, 내가 느꼈다.


과거의 내면아이의 욕구가 좌절당했을 때 현재 부모의 사과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핍을 그대로 둘 것인가, 내가 채울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엄마가 되기로 했고 동시에 내면아이가 되어 몸으로 다시 한번 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연습을 했다. 아기처럼 서핑도 배우고 아기처럼 영어도 배웠다. 


내면아이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태어나, 아기 그리고 아이, 청소년, 여성 또는 남성, 엄마 또는 아빠, 또는 중년, 장년 이 되며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겪는데 이 과정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여성과 남성의 시기가 빠지는 것도 결핍이다.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것이 다른 형태로도 채워질 수 있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양육하고 기르는 것은 삶에 큰 부분이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중년과 장년의 시기에 또다시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하나의 큰 균형이라 잘못된 것은 아니다. 20살에 대학을 가고 20대 중반에 취업을 하고 30대쯤엔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물리적, 생물학적, 정신적 나의 성숙이다.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경험하고 있는가, 신체가 나이 들어가듯 나의 마음도 채워지고 피어나고 흘러가고 있는가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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