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을 바꾸면 후회도 줄어들까?
호모 리그렉투스
몇 년 전 이동진 평론가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해 쓴 칼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지켜야 할 금기, 구역 성서에서 롯의 아내가 지켜야 할 신의 명령,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바깥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 그것은 바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이동진 평론가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처럼 쓰이는 이유에 대해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https://blog.naver.com/lifeisntcool/220277185788
<출처: 이동진 평론가 블로그>
무려 기원전 사람들도 알고 있는 이 사실.
뒤 돌아보지 말 것. 과거를 되짚으며 후회하지 말 것.
그러나 2022년에 사는 나는 매 순간이 후회이다.
2년 전 독립할 때, 전세가 아닌 매매로 집을 샀더라면. 20대 때 정신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든 (지나고 보니 학비는 무지무지 비쌌다.) 놀기를 열심히 하든 뭐라도 열심히 했었더라면. 아주 사소하게는 어제 그 옷을 왜 샀을까.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나는, 후회한다. 아까 야식으로 과자를 왜 먹었지?
네이버에 '후회'를 검색해본다. 가장 상단에 '후회'의 사전적 의미가 나온다.
후회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예시 문장: 후회 없는 삶을 살다.
"후회 없는 삶을 살다"
빌 게이츠처럼 많은 것을 이루고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면, 달라이 라마처럼 수련을 통해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아주 평범한 우리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지금 죽는다고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없다.라고 확신 있게 말씀하셨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몇십 년 간 일구었던 사업을 정리하는 시점이었다. 아빠의 사업은 한때 호기로웠으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아빠라고 아쉬움이 없었을까. 사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했을 것이고, 그중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을 틀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아빠 스스로 더 잘 알았겠지
.
그런 거 보면 후회는 後(후)라는 대상보다 悔(회)를 하는 현재 행동에 더 가까운가 보다. 잘못된 선택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까지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스스로의 인정과 만족이 '후회 없다'라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평가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그렇다면 후회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마음이 얄팍하고 납작하다 못해 날이 서있어 과거의 모든 선택지를 인정없이 평가해서 후회가 많은 것 일수도.
마음가짐을 바꾸면 후회도 줄어들까? 역시나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주절주절 대도 모르겠다. 후회가 많은 삶을 줄여보고 싶어서 글을 써보았다. 나는 이미 호모 리그 렉투스. 후회의 늪을 벗어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는 삶을 위해 현재의 나를 더 잘 들여다보고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