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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옮겨도 왜 재미없을까?

이직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를 옮겨도  재미없을까?

호모 리그렉투스


벌써 이직을 한 지 한 달 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어야 할 타이밍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이 익숙함, 능숙함에서 오는 여유가 아니라 설레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걸 안다. 그래서 편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하다.


지금까지 7번의 이직을 했다. 고작 8년 사이에. 가장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 9개월을 다녔다. 이직 사유도 각양각색이다.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나에게 맞는 직무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고, 마케팅으로 발을 딛고 나서는 인하우스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 회사를 옮겼다.


문과가 갈 수 있는 각종 직무를 섭렵하며 8년을 보낸 지금, 외국계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마케터로 일을 시작했다. 분명 더 나은 연봉, 더 나은 복지로 나아가고 있긴 한데.


나 지금 너무 재미없다.

재밌는 일만 있었음 좋겠단 말이예여

어느 날은 '와 진짜 지루해 미쳐버리겠네' 하고 입 밖으로 무의식이 나왔다. 이제 갓 입사했는데. 이전엔 이직을 하면 리프레쉬가 되고 두려움이 섞인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나 이제 나이가 든 걸까? 아니면 나도 이제 어엿한 진짜 회사원이 된 걸까? 아니 잠깐 이렇게 평생을 일해야 한다고?!


이직을 후회하는 건 아닌데, 앞으로가 막막하다.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의 유명 마케터, 패스트 캠퍼스, 헤이조이스와 같이 커리어 클래스들을 보면 모두 재밌게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럴까? 회사에서 열심히 일은 하는데, 이 노동의 쳇바퀴를 끊임없이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해진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노동의 지루함을 어떻게 이겨내는 것일까. 고민하던 차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일을 선택하고 시작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커리어 암흑기


대학교 마지막 학기, 목적 없이 수많은 대기업, 중견기업에 원서를 쓰고 우수수 떨어졌다. 대부분은 서류에서 탈락하고 몇 개는 1차, 몇 개는 최종까지 갔지만 결국 떨어졌다. 어영부영 졸업을 하고 백수 생활이 길어지자 불안했다. 마침 대학 동기가 다니는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전환 인턴을 뽑는다고 했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니라 경쟁률이 낮다고 해 지원을 했고 어렵지 않게 붙었다.


막상 붙었지만 겁쟁이인 나는 두려웠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게. 사람 만나는 게 서툴렀다. 지속된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고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사람들과 긴 대화를 나누는 건 부담이 되었다.


나의 첫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영업기획 + 서비스 직이 오묘하게 섞인 일이었다.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분들과 판매 계획을 짜고, 해당 물건을 고객에게 직접 팔기도 했다. 인턴으로 시작했지만 정규직 전환이 되는 인턴이었기에 일반 신입처럼 교육을 받았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하는 일이 많았기에 사회성이 조금 부족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입사할 때만 해도 나에게 문제가 있어 회사 다닌는 게 두려웠는데, 문제는 회사에 있었다.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 여성에게 가해지는 외모 평가와 회식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경력에 한 줄이라도 쓰겠다며 비겁하게 인턴 기간만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규직 전환은 내가 거절했고 쿨하게 회사를 떠났다.

  

집에서 한동안 놀다가 취업한 곳은 의류 벤더 업체였다. 이 회사를 다니기 직전 내가 가고 싶었던 마케팅 리서치 회사에 붙었다. 무사히 첫 출근을 하고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보니 너무 두려운 게 아닌가. 나의 모든 것이 들통날 것 같은 기분.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결국 다음날 아침, 출근하지 못하고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전화했다.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고 엄마도 같이 울었다. 끝났다 싶은 우울감은 이런 식으로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왔다.


회사 큰 화분에 있던 장미 허브. 너의 이름은 아메리


소규모의 작은 연봉, 집에서 아주 먼 양재역에 위치한 곳. 너무너무 작은 곳이라 내가 일을 못하거나 실수해도 잘리지 않을 거라는 건방진 믿음으로 다닌 회사.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때 나에겐 그런 곳이 필요했다. 나에겐 말그대로 회사에 다니는 연습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바이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생산 일정에 차질이 없는지 샘플실, 공장과 커뮤니케이션 한 후  바이어에게 답장을 보냈다. 퇴근 전 메일을 보내면 뉴욕에 사는 바이어의 답장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해 있었다.


영어를 읽고 쓰기만 어느 정도 하면 정해진 원칙이 있었고, 그것에 따라 진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의류 벤더 회사에 다니며 기억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하나, 우리가 샘플로 만든 옷들을 가져갈 수 있어 엄마가 좋아했다는 것. 둘, 겨울 시즌 뉴욕에 사는 바이어가 일을 쉬기 때문에 겨울 방학처럼 일주일을 쉬었고, 그때 혼자서 오사카에 다녀왔던 것. 삼. 회식 때 난생처음으로 소고기 육삼시미를 먹어본 것 (뷔페에 나오는 얼린 육회를 먹어본 게 다였다..)


오사카 여행에서 찍은 사진. 오사카의 상징 글리코 상


1년을 채우니 회사 생활(?) 자신감이 생겼다.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신감. 대표님께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많이 아쉬워하며 붙잡으셨지만 나의 앞날을 응원해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퇴사하는 날 2주 전, 회사도 비수기니 겸사겸사 쉬라고 선뜻 유급 휴가를 내주셨다. 사회 부적응에 허덕이던 나에게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첫 직장이었다.


내가 선택한 커리어의 시작


용기를 내어 들어간 3번째 회사.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업종에 발을 내디뎠다. 바로 마케팅. 마케팅 관련 경력은 이곳이 처음이기에 이력서를 쓸 때에도 이 회사를 다닌 이후부터의 이력을 작성한다.


소셜미디어 리서치 회사로 SNS, 온라인 기사를 수집해 비정형적 데이터 분석을 하는 곳이었다. 소비자 심리나 시장 동향, 트렌드를 파악하는 게 주업무였는데, 현상을 보고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 분석해, 보고서로 만드는 일이 꽤나 재밌었다. 이때 배운 엑셀과 보고서 작성 스킬은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 세상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똑똑해진 느낌이 들기도했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이 진행돼 끝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 보고서라는 형태의 결과물이 있어 성취감도 있었다. 보고서를 모은 자료로 어찌하다 보니 책을 출판한 경험도 쌓았다.


가장 좋았던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훌륭하다는 것. (대표는 정말 별로였지만..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사회 초년생이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열정도 가득했다. 심지어 퇴근 후 자발적으로 책모임도 했다. 덕분에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마구 받는 시간이었지. (사실 일이 너무 힘들어 성장이라는 말로 위로했던 것 같기도 하고 훗)


회사 동료분들과 주말에 함께 간 캠핑. 평일에 같이 일하고 주말에 같이 놀러다녔다.


특히 나는 팀장님이 정말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팀장님은 경력 3년 차에 나이도 지금 나보다 한참 어렸는데, 쉽지 않은 대표와 대부분 신입으로 채워진 사원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해 일을 진행시키고, 그 와중에 팀 리딩도 누구하나 섭섭해하지 않도록 잘 이끌어줬다.지금 내가 함께 일하는 팀장님들 (대부분 20년 정도 일을 하고, 40대 중반이시다)과 비교했을 때도 팀장님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팀장이셨다. 이 회사에서 2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버티게 한 것도, 내가 여기서 일한다면 저 팀장님처럼 될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년을 채우기 직전, 한 남직원의 불미스러운 행동과 그걸 처리하는 회사의 태도에 많은 실망을 하고 함께 일하던 여직원들과 퇴사 절차를 밟았다.


일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 쉬니 불안해졌다. 클라이언트였던 브랜드 마케터나 광고 대행사 마케터가 부러워 관련 업종으로 이력서를 뿌리다시피했다. 한 온라인 광고 대행사에서 연락이 왔고 퇴사 2개월 만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팀은 SNS팀이었다. 광고주의 SNS을 운영해주는 업무였는데, 이전에 했던 일과 업무 방식이 너무 달랐다. 리서치의 일은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한 달 동안 '나 혼자' 분석+ 보고서를 쓴 다음에 발표하는 과정이었다면 광고 대행사는 광고주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한다. 콘텐츠 기획을 하고 디자이너에게 넘기고 수정을 요청하고 광고주 컨펌을 받고 또 광고주가 지시한 수정을 요청하고, 이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나에겐 버거웠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건 겁이나 잡사이트에 이력서만 살포시 올려놨다. 다행히 다른 온라인 광고 대행사에서 스카운 제의가 왔다. 국내 온라인 전문 광고 대행사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곳이었다. 광고 집행에 바쁜 AE들을 대신해 광고 성과를 분석해주는 업무였다. 참 웃기게도 SNS 팀에서 콘텐츠 기획했던 일을 온라인 광고를 운영한 이력으로 오해해 광고 운영 + 분석의 역량이 다 되는 줄 알고 면접을 제의했던 거다.


다행히 어찌어찌 면접에 붙어 '온라인 광고'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다. 매체 데이터 + GA 데이터로 광고 성과를 분석하는 것이 메인 업무였고, 페이스북, 구글 담당자들과 협업해 사내 광고 캠페인 구조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해당 매체의 신규 상품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글로벌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think with Google. 회사에서 많이 지원해준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행사 참여했다.


여기서도 1년 반 정도 일하고 나니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생겼다. 나는 지원 파트이기 때문에 직접 실행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광고주가 NO라고 한다면 열심히 준비한 일들이 실행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 (물론 설득을 못한 나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상사가 여러 명이라는 것 (실제 상사와 클라이언트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서 일하루에 하는 시간이 다 끌어모아야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보려 해도 범위가 워낙 좁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 그렇다 다시 한번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커리아 안정기..?! (과연)


운이 좋게 인하우스 마케터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중견기업의 자사몰 퍼포먼스 마케터로 드디어 꿈꿔온 브랜드 마케터가 된 것이다. 오픈한 지 3개월 차 된 자사몰의 유입부터 구매까지 유저의 구매행동이 잘 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업무였다.


대행사의 업무가 오로지 온라인 광고를 집행하고 최적화하는데 집중되었다면, 브랜드 마케터는 전체 KPI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액션을 계획 하는 일이었다. 온라인 광고는 목표를 달성하는 위한 수많은 액션 중 하나의 조각이었다. 브랜드 마케터로 일을 하며 마케팅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맡은 브랜드였기에 정말 많은 애정을 쏟았다. 대행사의 일처럼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나의 책임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미우나 고우나 내가 끌고 가야 하는 브랜드였다. (물론 퇴사와 동시에 나의 책임이 끝났고, 저 생각은 좀 오버였다고 생각한다)


2년 3개월 간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수익성 문제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며 회사 경영진은 온라인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자연히 회사에서 내 업무 롤이 사라졌고 퇴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사는 오래 다니고 싶었고 100% 자의로 그만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도 컸다.


가장 아쉬운건 역시 점심시간에 한 보드게임. 평생 할 보드게임을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왕 이직하는 거 조금 액티브한 회사에 가고 싶어 외국계 패션회사를 택했다. 보수적이었던 이전 회사와 달리 슬리퍼를 신고 출근해도 되고, 팔에 있는 작은 타투도 당당히 빛을 보고있다. 일주일 중 3일은 재택 근무라 개인적인 시간을 운용하기에도 자유롭다. 일이 딱히 어렵거나 많지도 않다.


전체적인 체계가 잘 잡혀있고 업무 분장도 확실해 직원들 간 불편할 일도 없다. 그럼 뭐 천국이냐, 또 그런 건 아니다. 입사 한 달 반 만에 업무적으로 상사와 트러블이 있어 서로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후로 내 영역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믿고 맡겨준다. (하지만 상사와의 관계가 항상 좋거나 편하지만은 않지)


그렇다. 지금 나의 상황을 겉으로 보기엔 정말 평온하다. 그렇지만 정말 재미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나 앞으로 평생 일하면서 살 텐데, 이렇게 살다 죽는 걸까?


앞으로의 커리어, 사실 많이 불안해


사실 최근에 스타트업을 다니는 건 어떨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지금처럼 쳇바퀴 속에 갇혀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 안에서의 스피드, 압박감은 나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겠지 분명. 그렇다면 나는 잘 버틸 수 있을까? 꽤 어른의 나이에 닿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른다.


얼마 전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박진영이 가수 선예에게 "자기가 한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나의 상태를 잘 아는 것보다 나의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려는 힘, 내 선택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고 싶다. 어쨌든 힘내. 파이팅 (셀프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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