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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비 Jan 25. 2021

식빵과 한우

2021.01.24

식빵과 한우

  아이를 위해 점심에 맛있는 밥을 만들었는데 막상 아이는 점심을 거부했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먹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아이인데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하고 내가 먹어 봤는데 나쁘지 않았기에 더 충격이었다. 아이를 식탁의자에서 내리는데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설사를 너무 많이 해서 바지 밖으로 똥물이 배어 나와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이의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는 것 같아 아침에 푸룬 주스를 먹였는데 그게 문제인 것 같았다. 설사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잘 놀고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고창영 시인의 시를 보면 아들을 키우면서 똥이 더러운 게 아니란 걸 알았다고 하는데 이번 똥 만은 더러웠다. 아들을 씻기고 밖을 보니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또 설사를 할 수도 있겠다 생각되어 30분 정도 더 기다렸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3월 같이 따뜻한 봄날 같았다. 오랜만에 놀이터에 어린이들의 웃음이 넘쳤다. 유아 자전거에 아들을 앉히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동네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산책을 하다 첫 번째로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식빵을 샀다. 나의 식빵이지만 혹시나 아이가 저녁을 거부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식빵을 사고 아이의 저녁 메뉴를 위해 동네 정육점에 들렸다. 무엇을 해 줄까 보니 영롱한 빛깔을 자랑하는 ‘한우 치마살’이 있었다 100g당 13,900원. 사장님에게 부탁해 120g을 구입했다. 친절하신 사장님은 밖에서 놀다 들어간다고 하니 아이스팩까지 챙겨 주셨다.

  최대한 배고프게 하기 위한 신체활동의 일환으로 신나게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오랜만에 아빠와 놀이터에 나와서 인지 아이가 신나 보였지만 쓰고 있는 마스크가 침범벅이 된 걸 보니 안타까웠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어릴 때는 아빠가 항상 구워주었고 연애할 때는 지금의 아내가 구웠고, 회사에서는 고기 잘 굽는 선배들이 못 굽게 해서 평소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를 위해서 라면 고기 따위 잘 구울 수 있었다. 게다가 소고기라 어려울 게 없었다.

  120g이다 보니 단 4조각 들어 있었다. 2조각을 먼저 구워 아이가 먹기 편하게 잘라 주고 다른 2조각을 굽고 있는데 “꼬꼬(아이가 고기를 부르는 단어),꼬꼬” 하면서 식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이야 네가 지금 먹은 게 8,500원치 였어. 나머지 2조각도 눈 깜짝할 사이 먹었다. 그 덕에 나는 딱 한점밖에 못 먹었다. 그런데도 잘 먹는 아이를 보니 돈이 아깝지 않고 배가 부른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부모님을 생각했다.

  내가 지금 아이를 보는 것이나 우리 부모님이 나, 자녀들을 본 것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기를 먹으러 가면 본인들 보다는 자녀들이 먹는 것에 더 만족하셨을 것이고 자녀들 잘되는 게 본인들 잘되는 것보다 더 좋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고 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도 아빠와 엄마가 너를 이렇게 사랑으로 키웠다는 걸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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