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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Aug 17. 2022

퇴근길

웃고 울고 지지고 볶으며 사무실에서의 하루를 보내다가 정신 차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때만큼이나  여정을 준비해야 하니 일단 가방부터 주섬주섬 챙긴다.


여름 날의 해는 길다. 아직도 서대문 방향 어느 고층 건물 위에 걸쳐 있는 태양은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요 며칠 비가 와서인지 오늘따라 햇빛이 청량하면서도 따끔거린다. 이런 날도 많이 남지는 않았다. 곧 있으면 어둠 속을 헤쳐가며 집에 가는 날도 온다. 계절은 그렇게 속절없이 흐른다.


출근길에 비해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다. KTX의 배차 간격도 촘촘하고 출근과 달리 퇴근은 입장 마감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전철에서 내려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는 경우가 많아 급한 일 아니면 여유롭게 걷는다.


서울시청 뒤편 도서관 흡연구역에서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마시며 마음을 다잡는다. “거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아?” 영화 신세계 나오는 박성웅의 마지막 대사다. 이 상황에 이 대사가 떠오르는 건 그저 기분 탓인가.


1호선 전철은 종각역에서 시청역 구간 중간쯤에서 거의 90도 방향으로 꺾인다. 서쪽을 향하던 노선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그 꺾이는 지점의 지상에 내가 다니는 사무실이 있다. 그래서 퇴근 때마다 시청 역으로 갈지 종각 역으로 갈지 잠시 망설인다. 선택은 기분에 맡긴다.


퇴근길의 백미는 석양을 보는 거다. 아직은 해가 길지만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이 시간에 서해 쪽으로 떨어지는 태양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화보가 된다. 평택에서 천안아산 구간은 해가 넘어가는 길에 별다른 언덕이 없어 하늘 전체가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붉게 물든다. ‘아, 오늘도 수고했다’ 이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쁘다. 혹시 이어폰에서 잔잔한 재즈라도 들릴 때는 눈물 한 방울도 덤.


출근길의 역순으로 세종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반기는 장면은 타워크레인이다. 그렇게 많은 아파트와 빌딩을 짓고도 아직도 뭔가 지을 게 많이 남았나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은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다. 하루마다 달라지는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꾼다'는 낭만적인 멘트를 흘려보고 싶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서울과 다르지만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인' 생활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따라 어깨가 허리까지 내려온다.


신청곡은 싸이, 기댈곳

https://youtube.com/shorts/Kk65Yw-pD9M?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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