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To. yoon

어제 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벽을 느낀다. 너도 그러겠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너에게 잘 닿을까 고민한다.

가끔은 말이 너에게 닿기도 전에 울컥 가슴이 올라오기도 한단 걸, 

어린 너는 잘 모를 것이다.

너를 만나고 나서 알았다. 

이렇게 미숙한 나도 누군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이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타인의 인생에 이렇게 깊이 관심을 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또, 너를 만나고 나서 알았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안 되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사랑한다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의 사랑이 너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만큼 너도 흉터가 있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너는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소할 너만의 무기가 없다.

너의 세계에 내가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그 마음이 나를 이렇게 매일 다짐하게 한다.

열 번 다짐하고 열한 번 무너질 때

에라 모르겠다 나를 놓아둔 적도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을 것이다.

그 시간이 미안하고 아프다.

세상 어떤 존재도 너처럼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세상 어떤 존재도 너처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들뜨게 했고

나를 무겁게 했다.

잠든 너를 바라보며, 우리의 인연은 어디쯤에서 시작된 걸까 생각한다.

지금이 아닌, 먼 과거로부터 혹은 그 이전 어느 지점에서부터

우린 서로 닮은, 혹은 서로 닿을 수밖에 없는 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 갚지 못한 빚이었을까.

미처 대접하지 못하고 보냈던 귀한 손님이었을까.

닿을 듯 말 듯 닿을 수 없었던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