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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Oct 01. 2019

계절이 머무는 호텔


테라스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빼꼼 얼굴을 디밀었어.

알고 있니? 오늘 손님이 올거래.

듣고 있어? 덜걱덜걱 창문을 흔들었어.


아, 아직은 안되는데

어서 여름을 보내야 하는구나.

아직 함께할 일들이 남았는데, 어쩌지?

그러고 보니 후텁한 공기도, 낮은 구름도 벌써 떠나버렸네.

어서 짐을 꾸려야겠어.


못다한 이야긴 네 옷가지와 함께 서랍 속에 넣어둘께.

여기는 걱정마. 네가 다시 올 때 깨끗이 빨아놓고 널 기다릴거야.

너의 뜨거운 마음이 나를 설레게 했어.

너로 인해 참 즐거웠어.


여름은 방명록에 햇살 한조각 끼워놓고

서둘러 길을 나섰어.


안녕. 곧 네가 많이 그리울꺼야.



키가 훌쩍 자란 그림자가 먼저 도착했어.

이제 준비해. 곧 도착할 시간이라니까.

이번엔 좀 까칠하고 성격이 급하대.

하지만 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

그렇구나. 서둘러야겠다.

커튼을 달고 두꺼운 이불을 준비해야겠어.

거실엔 포슬포슬한 카펫을 깔고 주전자에 물을 올리자.

바삐 오느라 피곤했겠네.

부끄러움을 많이 타니 파티는 열지 말아야겠지?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정말 성격이 급하군.


가을은 사감선생님처럼 붉은 한 숨을 내쉬며 둘러봤어.

호텔안의 공기가 붉게 변했어.

깜짝놀란 커튼과 창문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어.

구석구석 먼지들도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어.


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해.

잠이 많은 편이니 일찍 깨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저녁 6시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면 좋겠어.

그거면 돼.


커튼과 창문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어.

먼지들도 마음을 굳게 먹었어.


우리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어.

6시에 알람을 맞춰놓는 일도 잊지 않았지.

예민한 손님에 맞추어 우리도 모두 예민해졌어.

째깍째깍 초조한 시계소리만 온 공간을 가득 채웠어  


마침내 또르르 알람이 울리고 깜박 잠이 들었던 커텐과 창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

창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먼저 들어와 소식을 알렸어.


얘들아, 봐봐 가을이가 그런거래.

창밖엔 가을의 숨으로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어.

붉게 물든 하늘은 우리를 들뜨게 했어.

모두들 하던일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어.

서둘러 떠난 여름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갑자기 슬퍼지기도 했어.

바람이 슬며시 옆에 다가와 어깨를 감싸주었어.

우리는 까칠한 손님이 참 고마웠어.


살며시 어둠이 내려오면

낮고 따뜻한 조명에 불을 밝히고 조용히 책을 읽었어.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그림자도 누워서 잠을 청했어.


우리는 가을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온 마음으로 빌었어.

편히, 온전히, 쉬다 가라고...


여기는 그래도 되는 곳이니까.



- 모두 온전히 이 빛나는 짧은 계절을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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