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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Aug 19. 2020

지금은 폐업한 카페의 커피

% Arabica Berlin Kreuzberg

미식가는 아니지만 확고한 입맛을 가진, 때로는 괴랄스러운 사람의 여행 <음식점> 탐방기.

아홉 번째, 독일의 베를린.

베를린 장벽 공원

찾아보니 폐업을 한 곳이라 이걸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 나에게는 의미가 있지, 하며 쓰기 시작한다.

베를린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많이 썼다. 그때 나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있었다. 죽음에 관한 것들.

죽음이 왜 그리도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는지, 그리고 철학의 중요 주제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 왔었다. 먼 곳에 잡히지 않고 있는 줄 알았던 죽음이 나에게 가까이 오자, 나는 모종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고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나는 거리를 걸을 때 음악을 듣지 않고 걷거나, 다소 잔잔한 음악을 선택해 들었다. 내게 화두로 던져진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거나 혹은 그때 밝은 노래를 듣는 것이 맞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베를린의 '응카페'라고 불리는 '% Arabica'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손미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손미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소개되었던 시의 한 구절이 바로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는 그 시를 찾아보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밥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중략)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손미,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는 이 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길게 늘어진 시에서 느껴지는 죽음과 생명으로 이끌어지는 감정. 회색으로 물든 마음. 움켜쥐었다 놓아진 몸.


그리고 카페에 앉아 나는 글을 썼다.


그때 쓴 글이 이 글이다.



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단단하지 못한 죽음에 대하여

단단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단단할 수 없는 것이리라

소멸. 사라짐. 무. 없음.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죽음은 필시 단단할 수 없으리라,

고 생각한다.


너는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다

물렁한 죽음을 줄곧 봐왔을 뿐이다.

짓눌려 터진 죽음을, 그 죽음들을

짓무른 곳이 밤과 함께 썩어가는 것을 너는 보았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엔 달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손미 시인의 시집을 샀다.



한 번 만나요

매일 멸망하고 있으니까


(중략)


사람들이 울먹이며 복음서를 읽는 세기말이니까

땅이 뒤집혀 생긴

추상화에서 봐요, 우리


(중략)


재난 경보음이 울리는 미술관에서

한번 봐요, 우리


-손미, <전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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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Germany



% Arabica Berlin Kreuzberg

주소: Reichenberger Str. 36, 10999 Berlin,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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