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

수업 단상-누구를 위한 해피엔딩?

by 고양이쌤

※드라마 ‘SKY캐슬’이 방영되던 때 쓴 글입니다.


최근 몇 달간 토요일 수업의 시작은 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었다. 금요일 밤에 방송하는 드라마라 그다음 날인 토요일에 말을 꺼내게 된다. 토요일은 중고등학생들만 오는데, 아무래도 초등학생들보다는 성적 부담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라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게 달랐다. 아이들과 내가 보는 드라마가 겹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반갑기도 했다. 수업 중 예를 들 일이 있으면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사건이나 인물을 들곤 했다. 또 보통 부모님과 함께 보고 오기 때문에 부모님 성향, 가정 분위기 등도 엿볼 수 있었다. 여러 모로 고마운 드라마였다.

“엄마가 드라마 보면서 쟤들은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니는 우짤래 하면서 잔소리가 더 늘었어요.”

“아빠가 저게 현실이래요. 돈 많은 집 애들은 진짜 코디받고 과외하고 그런대요.”

“우리 대학 어떻게 가요. 선생님?”


걱정이 많아진 아이들과 대학에 가는 방법과 진로에 대한 수업도 했다. <스카이캐슬> 등장인물들처럼 대학 가는 아이들은 대한민국 1%도 안 되고, 코디한테 돈 저렇게 많이 주면 잡혀간다고 말해줬더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마냥 드라마라고 안심할 순 없다. 수십 억 코디는 현실이 아니라도, 자식 교육에 인생을 저당 잡힌 부모와,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압수당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만은 지극히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제(2월 1일) 최종회가 방송되었다. 방송 내내 오그라드는 손과 발을 주체할 수 없어 괜히 딴짓을 하면서 시청했다. 아이들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갑분교육방송이예요.”(갑자기 분위기 교육방송)

“KBS 청소년 드라마 보는 줄.”

“1회 만에 다들 행복해지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재미없었어요.”

“김주영쓰앵님 조실장이랑 결혼까지 했으면 대박.”


대부분 성토하는 분위기였지만 19회까지 정주행 하며 애정을 쏟은 한 아이는,

“드라마 대본이 유출돼서 어쩔 수 없이 바꾼 거 아닐까요?" 하고 작가를 감싸주려 했다.

보통 나와 아이들은 취향이 아주, 매우 상반되기 때문에 이렇게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뭐가 그리 맘에 안 들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김주원쓰앵님이 시원하게 복수를 하면서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반성하니깐 이상했어요.”

“애들 죽어라고 공부만 시키고 거의 학대 수준이더만 어떻게 하하호호 그렇게 행복해진데요?”

“혜나 죽고부터 이야기가 점점 재미없어졌어요.”

“뭔가 찝찝해요. 똥 싸고 안 닦은 거 같아요.”


소설을 많이 읽혔더니 드디어 개연성을 이해한 건가 잠시 뿌듯함을 느꼈다.

“맞다. 쌤은 혜나가 지옥에서 돌아와서 캐슬을 싸그리 불태웠으면 좋겠드만.”

아이들이 '쌤은 왜 저래 사회에 불만이 많은 걸까.' 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입시학원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나 또한 부모와 아이들의 불안을 부추긴 대가로 먹고 살아왔다. 강사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 대한민국 교육의 모든 불행이 사교육에서 비롯된양 우리를 원흉으로 내모는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내 일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고, 성적을 올려주고, 성적이 올랐다고 기뻐하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나는 이 일이 좋았다. 그렇지만 늘 옳지 않은 일을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처음 드라마를 봤을 때 수치심과 통쾌함을 함께 느꼈다. 캐슬 부모들의 욕망과 코디 김주영의 괴변에서 나를 보았다. 나는 늘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그걸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대단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었고,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런 나의 욕망이 그대로 재현된 드라마를 보며 수치심을 느꼈다. 동시에 통쾌함도 느꼈다. 곧 그들이 철저히 부서지고 단죄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럼 내가 가진 욕망 또한 처벌받고 또 용서받았으면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와 연출은 나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드라마 보는 내내 가장 미웠고 지질했던 강준상(주인공 한서진의 남편)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가난한 소녀를 죽이는 데 일조해놓고, 용서해준 사람도 없는데 성인군자에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는 기적을 일으켰다. 딸을 오로지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었던 한서진은 어떤가. 마치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모성애 지극한 엄마 인양 그려졌다. 한서진이 사랑한 건 딸이 아닌 자기 자신 뿐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을 그런 처지로 몰아넣었던 시어머니가 초밥 하나 접시에 올려주자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보기까지 한다.(보살인가?) 자녀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없이 해대고, 감금 수준의 학대를 하던 차민혁과 그 폭력의 피해자 딸은 함께 댄스를 추며 요리를 한다. 이 장면은 가히 스톡홀름 증후군(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위해 별거와 이혼을 감행하며 자신의 삶을 찾을 줄 알았던 노승혜는 감동은커녕 실소만 나오는 수준의 메시지를 받고 폭력 남편의 곁으로 돌아온다. 중반부터 약간 예상되기는 했다. 자신에게 총을 들이대고 죽이려 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찾아오는 영재를 보면서부터.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고, 어떤 개혁도 없었다. 공부만 시키던 엄마들이 이제 과거의 자신들과 닮은 누군가를 비웃을 자격을 얻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드러내면서 거대한 포문을 열었다면, 적어도 책임자 한둘은 아작을 냈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화가 나는 건, 작가와 연출 중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이(따위)걸 해피엔딩이라고 만들었단 거다. 이성애자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의 정상화를 위해 그 밖에 있는 혜나는 죽어야 했고, 김주영은 악마가 되어야만 했다. 단지 그 가족공동체를 개선하고 보호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캐슬 가족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별 이유도 없이 “이건 다 김주영 그년 때문이야!”를 반복해왔다. 문제의 본질은 공동으로 은폐·살해해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복한 가정을 지켰어’ 하며.


현대판 <파우스트>를 보는 듯 긴장감 넘치는 장면과 연기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주영(김서형)과 한서진(염정아)의 연기 케미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둘의 파멸을 바라며 20회를 본방 사수했던 나의 노고를 무참히 짓밟은 제작진...미워.


나는 더 이상 입시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으려고 입시 논술 문의나 자소서 첨삭 일은 거절한다. 물론 그럴 능력도 되지 않지만. 그런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서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한 일은 돈을 받지 않고 해 준다. 나는 늘 이곳과 저곳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게 행복한 인생을 보장하는 건 아니란 걸 알지만 입시강사 경험으로 봤을 땐, 더 배우고 더 공부해서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는 건 확신한다.


굳이 입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대학이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중요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조금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을 위해서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자고. 공부는 목적 없이 할 때 제일 재미있고 쓸모 있다고 효율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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