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좀 어디 가둬 주시면 안 돼요?”
몇 달을 멀쩡히 수업 잘하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이 빨개졌다. 퉁퉁 붓고 가려워 하길래 수업이 어려울 것 같아 집에 보냈다.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갑자기 왜 그럴까요 하고 물으니
“고양이 한 마리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하셨잖아요. 그 고양이만 안 만지면 된다고 하셨지만, 애들이 그런 자제력이 없잖아요. 귀여우니까 계속 만지려고 하고. 그 고양이만 우리 애가 갈 때 어떻게 방에 넣어둔다던지 해주실 수 없나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을 결국 만나는 구나 싶어서. 나는 책방에서 네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내가 책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고양이들 또한 사람을 좋아해서 고양이의 거처를 책방으로 삼았다.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나 학생들도 대부분 고양이를 좋아하고, 사실 고양이 때문에 책방에 수업하러 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아파트 살면서 반려동물 키우기가 쉽지 않으니 학부모님들 또한 아이들을 책방에 보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시키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상담을 왔을 때 고양이를 지나치게 무서워 하거나 알레르기가 있으면 수업을 하기 곤란하다고 말씀드린다. 물론 수업하는 교실에는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단속하고 있지만, 고양이털을 아예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걸 감수하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그만두는 아이들도 생기는데, 고양이를 가둬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나는 좀 당황했다. 여기는 '고양이'쌤 책방이고, 이 고양이들은 내 가족이고 내 아이다. 화장실을 제외하곤 문이 없는 곳이라 가둬둘 만한 곳도 없었다. 가둬둔다면 내내 울 게 뻔한데, 그런 상황에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만한 공간이 없어요.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방이 또 있는 거 같던데 아닌가요?”
“문이 없어서 닫아둘 수가 없어요.”
수업 중에 전화를 받았기에 전화를 급히 마무리했는데, 수업 중에 문자가 왔다. 시간 될 때 전화를 달라고 했다. 저녁 8시 넘어 수업이 끝나고 전화를 했다. 오늘 갑자기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 친구가 둘이나 있어서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친구는 개털 알레르기라고 하니 OO이도 한 번 검사를 정밀하게 해보시라 말씀드렸다. 공부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니까. 그 분은 그건 알겠다며,
“그런데 선생님, 제가 애가 아프니까 아까는 말을 좀 그렇게 했는데요. 저한테 애가 소중하듯이 선생님한테도 고양이가 그렇지 않겠어요.”
아, 그래도 내 상황을 이해해주시는 구나 싶어 반가웠다. 자기가 한 말이 내게 상처가 됐음을 안다면 그걸로 사과 받지 않아도 좋다고 순간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는 그냥 넘어가지만요. 선생님 다른 부모들한테는 그렇게 말씀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저 진짜 섭섭했었거든요. 어떻게 딱 잘라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제가 고양이를 없애달란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프니까 방법을 찾아달라고 한 건데, 어떻게 한 번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실 수 있어요?”
역시 나의 착각이었다. 그 분은 나에게 미안해서 전화를 한 게 아니고 따지려고 한 것이다. 그 분은 이어서,
“저는 감안하고 애를 계속 보낼게요. 애도 계속 가고 싶다 그러고. 그러나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제가 알아서 그만둘게요.”
“무슨 말씀이신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되네요.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다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길 거고 저는 어떤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어머니가 제게 사과를 하시는 줄 알았고 그래서 저도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고 서로 통화를 한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신 것 같은데요.”
“제가 선생님 입장을 생각해서 감안하고 애를 보내주겠다잖아요. 근데 왜 선생님이 섭섭하죠? 그리고 솔직히 제가 돈 내고 다니는 입장에서 고양이 좀 어떻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돈 내고 학원 보내주는데 그 정도 환경도 요구를 못 하나요?”
“고양이 키우는 거 알고 보내신 거 아닙니까? 그리고 보내주시다니요? 저를 도우려고 수업을 보내시나요? 저는 그 수업비에 해당하는 적절한 수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고받는 거지 주시는 게 아니죠.”
“그럼 저희 처음 갔을 때 고양이 알레르기 생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 이런 얘기 해주셨나요? 고양이 키우는 환경 때문에 이렇게 손해를 봤는데 저희는 그런 말 못 들었거든요.”
“보통 처음 상담 오면 얘기하는데 저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근데 집에서 동물 못 길러서 이런 환경 좋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좋을 때는 따로 비용을 지불하셨습니까?”
“애들 다니는데 알레르기 일으키는 동물이 있고 그런 게 맞는 건가요? 알레르기 일어나는 애들이 있으니까 조심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세요?”
“알레르기 일어나는 애들도 있지만 제가 억지로 다니라고 한 적 없고요. 좋아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환경 고마워하는 부모님도 많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 애 그만 두라는 거예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어머니가 결정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시는지를 다 아는 상황에서 저는 수업이 힘들 것 같네요.”
“참 이상하시네요. 저는 어른의 문제는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애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그게 안 되는 분인가 보네요.”
“지금 이 문제도 아이를 매개로 생긴 일 아닙니까. 어머니랑 저랑 단 둘이 생길 문제가 뭐가 있겠어요. 전부 아이를 놓고 생길 일이죠. 저는 이런 마음으로는 수업이 안 될 것 같아요.”
1년에 한 번 꼴로 이런 일이 생긴다. 아이와의 일이 부모와의 일로 커져서 수업을 그만두는 아이들. 내 잘못도 있고, 아이 잘못도 있고, 부모 잘못도 있을 때, 그 일이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부모 마음을 모르는 건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아는 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알레르기가 생겼는데도 감안하고 계속 보낸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만두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화가 난 것 같다’고 했다. 또 ‘선생님이 아이가 그만 둬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서, 내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났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엄마에게 ‘몇 개월이나 수업을 했는데, 우리 OO랑 이제 수업을 못하게 되었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문자가 왔다. 내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싶어 사과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남편에게 물어보니 식당에 가서 내가 계속 올 테니 인테리어를 바꿔달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그런 게 갑질이라며 절대 보내지 말라고 해서 그냥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수많은 사정으로 수업을 그만둔다. 이사를 가서, 다른 학원으로 옮기려고, 아이가 싫다 해서, 학원 시간이 바뀌어서. 때로는 연락도 없이. 밀린 수업료도 내지 않고. 그렇게 그만둘 때 부모와 아이들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던 걸까? 아쉬움과 미안함, 애틋함 같은 감정을 가졌던 걸까. 왜 자신의 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껴주길 바라는 걸까. 나에게는 그저 다 같은 아이들 중 하나일 뿐인데. 나에게 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이 또한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감정이겠지.
나는 가끔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나에게 엄마의 마음이 없다는 타박을 듣곤 한다. 그럴 땐 나의 윤리의식에 큰 결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윤리 의식을 더 크게 가져야 될 쪽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하고, 또 부모가 된 그들에게 있지 않을까? 내가 낳은 아이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다른 존재들에게 상처 또는 피해를 주지 않게끔 키우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그들 아닐까?
가끔이지만 그런 부모를 본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를 쫓아다니고 마구 만져대는 걸 뿌듯하게 바라보는 부모. 아이들이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싶어 한다며 참치캔을 사와서 주고는 날카로운 캔뚜껑을 비롯한 쓰레기를 그대로 놔두고 가는 부모. 나는 부모가 있든 없든 말한다. 고양이에게 ‘소리 지르지 마라, 쫓아다니지 마라, 네가 고양이한테 하고 싶은 걸 하지 마라, 고양이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진짜 사랑하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못마땅해 한다. 그깟 동물한테 좀 함부로 하면 어때서. 우리 애가 그걸 원하는데. 우리 애가 가장 소중한데. 그런 사람들과는 결국 관계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애’를 생각하느라 ‘다른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로서의 윤리 공부가 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