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윤리학

수업 단상-먹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먹나

by 고양이쌤


15년 강사 생활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거 모르겠는데 가르쳐주세요.”, “이번 시험 몇 점 받았어요.”가 아닌 “배고파요!”일 것이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프다. 내 얼굴에 치킨이나 떡볶이가 그려져 있는 것처럼 인사 대신 뭘 사달라는 말이 항상 먼저다. 나는 과민한 대장 덕분에 집이 아닌 곳에선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이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어 외국에 여행가도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맛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맛집을 탐방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먹방을 보는 아이들이 꽤 많다. 물어보면 다들 본 적이 있고, 꾸준히 보는 아이들도 많다. 밴쯔, 떵개, 나름, 도로시 등 인기 있는 먹방 유튜버들의 이름을 줄줄 꾀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먹방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그걸 왜 보느냐고 물었다.

“대리만족이죠. 저는 못 먹는 음식을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다이어트 때문에 많이 먹을 수 없는데 대신 폭식하는 영상을 봐요.”

“인간이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는 게 신기하잖아요!”

“맞아. 그러면서 엄청 몸매는 좋잖아.”


한때 먹방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여론이 좋지 않아 실행되진 않았다. 그러나 지상파에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먹방이 지겹기도 하고 왜 먹는 것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도 궁금해 수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주제는 크게 ‘먹방 규제 필요할까’와 ‘음식에도 윤리가 필요할까’로 정했다.


먼저, 먹방 규제에 대한 찬반토론을 했는데, 아무도 찬성하려는 사람이 없어 내가 찬성, 나머지는 반대, 무려 1 대 6의 토론이 시작됐다.

“요즘 비만 인구가 늘고 있고 성인병에 걸리는 연령도 낮아지고 있으니까 폭식이나 탐식을 권장하는 먹방에는 어느 정도 규제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먹방을 보거나 찍는 건 개인의 자유인데 그걸 막는 건 인권 침해잖아요.”

“근데, 국민 건강에 해로운 담배 피우는 장면 같은 건 규제하잖아.”

“담배만큼 먹방이 해로울까요? 오히려 먹방 덕분에 행복해지는 사람도 많잖아요. 먹방을 보고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양으로 먹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다이어트할 때 먹방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걸요.”

“먹방을 보다가 배가 고파져서 야식을 시키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너희는 그런 적 없어?”

“물론 있지만 유튜버처럼 많이 먹진 않아요.”

“국민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잖아. 먹방은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이 많이 보는데, 어릴 때부터 잘못된 식습관을 갖게 만드는 거 아닐까? 미국이나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탄산음료 자판기를 학교 내에 두지 못하게 한다거나 설탕세, 비만세를 기업에게 걷는다거나 하는 제도를 갖고 있어. 먹방 규제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볼 수 없을까? 적어도 시청 지도 같은 건 할 수 있잖아.”

“TV도 시청 지도하는데 아무도 안 지키잖아요.”

“안 지킨다 해서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또 지키는 사람도 있고,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줄 수도 있고. 또 해선 안 되는 거라는 의식은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먹방을 보라, 보지 마라 하는 건 국민을 너무 못 믿는 거 아닌가요? 우리도 판단을 할 줄 알아요. 저렇게 먹는 건 몸에 안 좋다, 저런 음식을 실제 먹으면 안 된다, 이렇게 다 생각한다고요.”

“그럼 실제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또 먹으면 위험한 양으로 먹는 유튜버가 있다는 건데, 조회수 높이려고 더 자극적으로 한다는 거잖아. 그럼 그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거 아냐?”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자극적인 방송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그 사람들 자유잖아요. 그리고 어디까지가 자극적인 방송이고, 무엇이 폭식인지 기준도 애매하고요.”

“그건 그렇네. 기준을 정하기가 참 애매하겠다. 그럼 논의의 방향을 약간 바꿔서. 요즘 사람들이 먹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어.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먹는 것이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인양 생각하는 게 선생님 눈에는 그리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거든. 너희는 어때?”


음식1.jpg 음식에도 윤리가 필요할까?


자연스럽게 두 번째 주제, ‘음식에도 윤리가 필요할까’로 넘어갔다.

“먹을 때 젤 기분 좋잖아요.”

“맛있는 거 먹으려고 사는 거죠.”

“돈 많이 벌면 이 세상 음식 다 먹어보고 싶어요.” 같은 대답들이 많았다.


나는 먹는 것은 늘 생존 본능이고, 그 본능이 채워지고 난 이후에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다. 아마 청소년 시절 살이 쪄서 놀림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당시 그리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살이 비정상적으로 쪘고, 몸이 아파서 고생을 많이 했다. 또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방황도 많이 해서 비만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또 필요한 에너지 이상을 섭취하는 것은 환경적으로도 비윤리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으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동물들의 터전이 되어야 할 곳이 밭으로 개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식재료의 종류와 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보카도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음식, 푸아그라, 샥스핀처럼 비윤리적으로 도살해서 만드는 요리, 소, 돼지, 닭처럼 사육과정에서 동물권이 지켜지지 않고, 환경 또한 파괴하는 경우 등의 예를 들었더니,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거냐며 길길이 날뛴다.


물론 실천은 매우 어렵다. 나 또한 육식을 끊어보고자 여러 번 다짐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올해부터 적어도 고기를 덩이째 구워 먹는 요리는 먹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최근 깨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씩 줄여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된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선생님처럼 생각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혼자 그래 봤자 뭐 하냐.”, “다들 먹는데 나만 안 먹으면 손해다.”, “세상 한 번 사는 거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죽어야 되지 않겠냐!”

보통 토론하면 서로 눈치 보며 말 안 하려 하는 아이들이 음식 얘기에는 눈을 까뒤집고 덤벼대는 통에 겁에 질릴 정도였다. 결국 서로 소리를 지르며 니 말이 맞네, 내 말이 맞네 하다가 한 녀석이 이렇게 소리 질렀다.

“쌤은 먹기 위해 살아요! 살기 위해 먹어요!”

“둘 다 아니다! 이 넘아! 그럼 너는 뭔데!”

“몰라요. 저도….”


이렇게 싱겁게 우리의 토론은 끝났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까, 살기 위해 먹을까? 나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먹는 것과 관계없다. 식량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먹는 것 때문에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기 위해 인류는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일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위 욕구를 완전히 충족한 상태에서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이 완전히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식욕과 성욕이 주인공이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예술적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관계 형성의 욕구가 주인공이 세상이 좀 더 행복한 세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음식에 관한 욕구가 커지는 것이 개인의 욕구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욕구를 추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각자도생, 헬지옥, N포세대… 이런 신조어가 뜻하는 건 최소한의 욕구 충족조차 사치가 된 세상이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은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을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정의한다. 어쩌면 우리는 복잡함과 진지함을 추구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주 쉽고 싸게 만족을 추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우리의 삶을 채워주고, 위로해주게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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