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오지 않을 때

수업 단상-책 좋아하게 만드는 팁은 없습니다

by 고양이쌤


독서수업의 기본은 책 읽기다. 책을 읽어오는 것 외엔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전혀 없다. 보통 매주 한 권의 책을 주는데, 모든 아이들의 독해력이나 취향에 맞춰서 책을 선정할 수는 없으므로 책을 끝까지 읽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책을 다 읽어오지 못했을 경우, 때론 교실 밖에서 책을 다 읽고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다. 수업 주제에 따라 책 내용을 전혀 모르면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 스스로 다 읽지 못했음을 솔직히 밝혀주길 바란다. 읽은 척하는 건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독서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대화가 계속 산으로 가거나, 관련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임 집중도가 떨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오지 않으면 괜히 딴 얘기를 하고, 수업 내용을 모르니 집중을 못하고 다른 친구들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읽지 않은 친구를 위해 책을 다 설명해줄 수도 없다. 그건 열심히 읽은 친구들에게 피해가 된다. 함께하는 독서 수업의 장점은 다양한 생각을 서로 나누고, 내가 미쳐 알지 못했고, 깨닫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고 왔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솔직히 사과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부분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되고, 그럼 더 혼나거나 일이 커질까 봐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더 많은 경우는 단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겐 반드시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지시켜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반성하지 않겠다는 의지고, 그 잘못을 앞으로도 반복할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오지 않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잘못이냐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사정이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사정을 말하는 것. 석고대죄를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마디일 뿐이다.

“얘들아, 내가 책을 다 못 읽었어. 다음엔 읽고 올게.”


유독 책을 읽어오지 않고 읽은 척하는 아이가 있었다.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어려웠을 수도 있으니. 난이도를 조정해주고 시간을 배려해준다. 오래 반복이 될 경우 엄하게 야단치기도 한다. 어쨌든 규칙은 ‘못 읽으면 솔직히 말하고 사과한 뒤 읽고 수업에 들어오자’다. 나중에 이 아이는 지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지키지 않았다. 책을 아예 읽지 않고 교실에 와서 읽었다. 그러다 한 날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건들건들 교실로 들어오더니 삐딱한 말투로 “책 주세요. 지금 보게요.”하는 게 아닌가? 본인 책조차 챙겨 오지 않고, 미안한 기색 없이 당당히 책 내놓으란 게 너무 어이가 없어, “책 읽어 오는 건 숙제 아니야? 이렇게 버릇없이 굴어도 되니?”했더니, 짜증을 내며, “아, 그래서 여기서 읽는다고 했잖아요!”라고 짜증을 냈다. 이쯤 되면 수업을 더 이상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돌려보내고 학부모와 얘기한 후 수업을 그만두게 했다. 학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못 가르치겠다고 돌려보낼 수가 있느냐고 화를 냈다. 나는 이렇게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려고 하는 학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 상처만 남기고 수업이 끝났다.


지금도 여전히 책을 읽어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어준다고 한다. 그림책도 아닌데 얼마나 힘드실까…… 나는 차라리 안 읽어오게 놔두시라고 말한다. 혼나거나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본인이 그 상황을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몇몇 학부모는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한다. 책을 못 읽으면 미리 전화해서 혼내지 말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다.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먼저 그런다고 다음에 아이가 책을 스스로 잘 읽을 리가 없다. 아이는 또 같은 상황이 되면 부모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조를 것이다. 또 부모가 선생님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부모가 선생님 위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럼 수업에서 선생님 말을 더는 듣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수업료는 학부모가 내지만, 수업은 선생님과 학생의 문제다. 수업의 영역에 학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은 여러 모로 학습에 좋지 않다.


계속해서 책을 읽어오지 않는 아이는 지금껏 몇 없었지만, 결국 그 아이들은 선생님을 어떡하면 속일 수 있을까만 고민하게 된다. 역효과인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책은 괴물이 된다.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괴물. 그리고 나는 괴물을 만드는 최종 보스. 얼마나 끔찍하게 밉겠는가. 이 지경이 되면 아이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책은 싫지만 글쓰기는 좋다면 단체 수업에서 혼자 수업으로 바꾼 뒤 책을 읽어주거나 그림책을 지정해준다. 책 수준이 맞지 않거나, 취향에 맞지 않다면 스스로 책을 고르게도 한다. 책이 정말 읽기 싫고 수업이 지겹다면 그만둘 수 있게 부모를 설득해주기도 한다.


어떤 교육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자발성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 특히 읽기와 쓰기는 본인이 마음이 없으면 무슨 수를 써도 시킬 수가 없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거나, 끝내 연필을 잡지 않는 아이도 보았다. 앉아있기만 하고 듣기만 하면 되는 수업과는 다르다. 억지로 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교육에는 강제성도 있어야 한다. 배움이 즐겁지만은 않다. 흥미를 갖고 배우기 시작하더라도 특정 단계에 가면 힘들고 지겨워질 수도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참고 견딜 필요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하고 싶은 것만 재미있는 것만 하려고 한다면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해 그 단계를 넘어서게 독려할 수 있는 게 선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 수업을 신청하는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이미 다니는 학생(학부모)들의 추천으로 온다. '재밌게 수업한다,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준다' 하는 추천이다. 또 수업의 목적을 여쭤보면 '책에 흥미를 갖게 하고 싶다, 글쓰기를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럴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한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재미있지 않습니다. 저도 늘 어렵고 힘듭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추천해주는 책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상 수업에 와보면 그리 재미있지도 않을 거예요. 두세 달 지나면 힘들다고 할 겁니다. 오히려 이 수업으로 인해 책이 더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책 보다 재미있는 게 엄청나게 많은 세상에서 책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읽기와 대화하기, 쓰기가 아이의 삶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일이 되길 바라면서, 가능하다면 그게 얼마나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오늘도 다음 주에 수업할 책을 나눠주면서 아이들이 기색을 살핀다. 다 읽어올 수 있을까? 재미없으면 어쩌지? 이해 안 되면 어쩌지? 걱정은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겐 여전히 방법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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