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땠어.”
인사가 끝나자마자 묻는 질문이다. 반응은 두 가지다.
“재밌었어요.” 또는 “재미없었어요.”
교실 밖이라면 그랬구나 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그 단어 쓰지 말랬지.”하고 경고를 준다.
“주인공(또는 등장인물 중 하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하고 물으면
“착해요.” 또는 “나빠요.” 한다. 그럼 또 말한다. “그런 표현 쓰지 말랬지.”하고.
무슨 금지어가 그리 많으냐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곧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럼 뭐라고 말할까 하면서 말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다층적인 인간의 내면을 딱 둘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겠는가?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구분 짓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양극단 사이 수많은 감정을 놓치고 만다.
재미있었다면 무엇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 말할 수 있다. 스토리의 긴박감이 나를 흥분시켰을 수도 있고, 반전에 짜릿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웃음이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때문에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고, 이야기의 꽉 찬 밀도에 몰입했을 수도 있다. 처절한 주인공의 사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는데 그걸 재미있다는 말로 표현하면 상대방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네. 그걸 보고 웃다니!’하고 말이다.
재미없었다면 무엇이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는지 말할 수 있다. 너무 질질 끄는 결말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코웃음을 쳤을 수도 있다. 진부한 캐릭터에 공감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고, 배경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굉장히 도움이 된 책인데 단지 웃기지 않아서 재미없다는 말을 했다면 이 또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된다.
인물은 어떤가. 아이들에게 “백설공주는 착할까, 나쁠까?”라고 질문하면 더 이상의 토론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묻는다면 어떤가?
“백설공주는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어떨 때는 착하고, 어떨 때는 나쁘게 느껴졌어? 착하다, 나쁘다 라는 단어는 쓰지 말고 말해보자.”
“계모에게 쫓겨나도 화를 내지 않아서 인내심이 커요. 그래서 착하게 느껴졌어요.”
“야, 그게 왜 착하냐! 억울하면 화를 내야지. 바보 아냐! 아니면 착한 척하는 거 같아”
“그래, 게다가 난쟁이 집에 허락도 안 받고 들어갔잖아. 개념이 없어!”
“그래도 나중에 사과하고 난쟁이 집 청소도 하고, 밥도 해줬잖아. 남을 잘 보살피는 성격이야”
“집에 살게 해 줬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건 당연한 거지. 난쟁이들이 낯선 사람한테 문 열어 주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도 안 듣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이야.”
“남은 의심하고 미워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거잖아.”
“한 번 속으면 됐지 두 번 세 번 속는 건 착한 게 아니고 멍청한 거야!”
“할머니가 열어달라는데 어떻게 안 열어 드리냐. 예의가 바른 거지. 그리고 마녀가 마음먹고 변신하고 오는데 어떻게 알아보냐고!”
“어쨌든 그래서 죽을 뻔했잖아. 왕자 아니었음 죽었어. 좀 경솔한 거 같아”
“야, 그런데 왕자가 젤 이상하지 않아? 시체 같이 누워있는데, 그것도 첨 봤는데 허락도 안 받고 예쁘다고 뽀뽀하고. 변태 아냐?”
"그러게. 근데 내가 백설공주면 일어나서 "이게 무슨 짓이에요!"하고 뺨 때릴 거 같은데 왕자하고 결혼하잖아. 백설공주도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단지 단어 두 개를 금지시켰을 뿐인데, 동화 특유의 단순함 속에 녹아있는 상징을 분석하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극단적인 표현을 금지시키다 보면, 아이들의 반응이 늦어지긴 한다. 그러나 생각 없이 성급하게 단정 짓는 백 마디 말보다는 훨씬 낫다. 고심해서 고르고 골라 나오는 조심스러운 한 마디 말이 때로는 큰 감동을, 때로는 핵심을 찌르는 말이 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