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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0. 2022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어쩌다 오십 중반이 되었다

뭐지 이게? 한 인간의 역사로도 밋밋하고 듬성듬성이다. 누군가는 살아온 삶이 소설책 3권은 된다고 하는데 나에겐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양이다. 지금 나는 노란 물이 빠져가는 오후에 볕 같다. 가열찬 삶을 뒤돌아보며 그땐 그랬어하고 꺼낼만한 인생의 절정이 없다. 늘 그만그만한 시간을 이어서 추억이라 여기고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 후배가 주는 삶의 의미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내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앞에 나를 세워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를 표현하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다. '나로 말하면 이거지.. 내가 좋아하는 건 이거야'가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다.


조그만 사업을 한지 이십 년이 흘렀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을 복사한 내일의 연속이다. 가끔은 직장인인지 사업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성공한 사업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전빵 주인처럼 종일 컴퓨터를 보다가 하루가 간다. 때론 로봇 같고 때론 한편에 가전제품 같다. 일이 싫진 않지만 영혼을 우려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년 없는 사업이지만 스스로 정년을 정했다. 그때가 되면 원하는 걸 마음먹는 순간에 바로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부족하지만 지금의 일상도 애정은 간다. 이 모든 생활의 합이 모여 나를 규정하고 있으니 이것도 나의 인생이다. 그러나 나이 오십 중반에 진짜 나를 만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 때 쉽게 포기하고 상처받으며 산다. 하지만 자존감을 세우고 나를 치유해야만 살아갈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50대, 인생 후반전에 만난 '100일 글쓰기'

삶에 치어 사는 와중에 100일 글쓰기를 만났다. 글을 쓰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글을 쓰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어려운 인생의 숙제를 글쓰기로 풀어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일단 딱 100일만 써보자. 삶이 변하는지는 백일 후에 판단하기로 하고 무작정 써보기로 했다. 글은 글빨이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위대한 진리를 마주하고 싶었다. 기성작가의 완성도 높은 글도 좋지만 요즘 시대는 어떤 글이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정보가 된다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게도 동기부여를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치유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글쟁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나 같은 초짜에겐 낮잡아서 부르는 어감으로 전혀 들리지 않는다. 글쟁이만큼 맛깔스러운 표현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부르는 말처럼 들린다. 글쓰기를 타고난 사람도,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도 모두 글쟁이다. 지금 왕성하게 글을 쓰는 분들도 있고 현업에 밀려서 글과 멀어져 사는 분도 있다. 아니면 글과는 아예 담쌓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 글이란 건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없지만 될 필요도 없다. 어떤 글이든 쓰는 행위 자체로 인생을 바꾸는 한걸음이 된다. 108배를 하듯 눈 딱 감고 백일만 쓰자. 인생을 집안 청소하듯 정리하는 시간이 될 테다. 그리고 백일 후 손에 쥐어지는 100가지 글로 인생의 업그레이드를 맞이하리라 확신한다.


학창 시절 교내외 백일장에 참가하는 등 글쓰기와의 인연은 간간히 지속되었다. 그러다 고교 때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다. 담임이 문과 성향이 압도적인데도 이과를 갈 거냐고 두 번이나 물어왔다. 섬세하게 나를 들여다볼 통찰이 없었다. 돈 벌려면 이과로 가야 된다는 막연한 통념을 그대로 따랐다. 대학에서 어울리지 않은 전공을 선택한 대가를 훗날 톡톡히 치렀다. 딱히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 학업에 충실하기도 어려웠고 정서적으로 배고픈 상태가 지속되었다. 매년 방송국 작가 모집이나 드라마 극본 공모가 나오면 괜히 초조해졌다. 어떻게든 지루한 날들을 탈출하고 싶었다. 어쭙잖은 글을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몇 번 공모해 보았으나 광탈은 나의 몫이었다. 한 번은 친구가 다니는 잡지사에서 콩트를 연재할 거니 원고를 내보라고 제안을 받았다. '백일몽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나름 재밌게 썼다고 자부했는데 잡지사의 편집장쯤 되는 사람에게 수준 미달의 글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문학소년의 추억으로 글을 쓰니 어림없는 일이다. 세상은 넓고 고수들이 많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며 남들처럼 먹고사는 인생의 타임라인에 올라섰다. 그렇게 글과 서서히 멀어졌다.


글쟁이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해석하는 글쟁이는 그렇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100일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또각또각 자판을 채우는 소리와 활자를 통해서 내 마음과 연결된다. 마감에 쫓기며 글 쓰는 걸 로망으로 생각했는데 요즘 매일매일 마감에, 숙제를 덜한 아이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아, 우리는 모두 글쟁이다.

100일 글쓰기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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