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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1. 2022

세 가지 습관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나는 결벽증이나 강박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무던한 편이라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산다. 사주에도 수(水)가 많아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이런 내게 몇 가지 오래된 습관이 있는데 그것이 왜 지속됐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나의 행동을 눈치챈 사람도 없다.


첫 번째는 신발을 벗으면 오른쪽 신발이 왼쪽보다 위로 가야 한다 

똑같이 키가 맞아도 안된다. 반드시 오른쪽이 살짝이라도 더 위로 놓여야 한다. 현관의 신발들이 요리조리 있으면 내 신발이 아니더라도 죄다 그렇게 놓는다. 이런 키재기는 젓가락도 마찬가진데 오른쪽이 더 올라가게 정렬한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날 '돌을 신이라 믿는 거'와 하등 차이 없는 행동이다. 다만 오른쪽이 위로 가면 누군가를 보호하는 기분이 든다. 울타리를 치는 느낌이다. 오른쪽은 보호자고 나와 같다.


두 번째는 출근길에 지하철 개찰구는 10번으로만 입장한다 

다른 번호로 들어서면 전혀 예상하지 못할 세상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마치 기이한 일이 생길 듯한 묘한 기분에 젖는다. 이런 감정의 기원은 확실히 알고 있다. 하루키의 1Q84를 읽고 나서부터다. 수도고속도로의 낯선 출구로 나간 아오마메는 두 개의 달이 뜬 세계로 스며든다. 독서의 과한 후유증이다. 가끔 10번을 막아서는 방해자를 발견하면 잠시 기다렸다 들어가기도 한다. 바빠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옆라인을 이용했다(별일이야 없었지만)


세 번째는 집 밖을 나가면 꼭 염주를 찬다 

외출 시 필수품이다. 그렇다고 내가 불자라 말하기는 그렇다. 종교보다는 명상에 가까운 불교를 찬미한다. 아무튼 불심 깊은 불자는 아니다. 가끔 고즈넉함을 느끼고 싶을 때 사찰을 다녀온다. 지금 끼는 염주는 관악산 연주암에서 구해왔다. 그전에는 부산 해동용궁사에서 사 온 짙은 고동색 염주를 꽤나 차고 다녔는데 어느 날 툭하고 끊어졌다. 아쉽고 허전 한참에 연주암 팔찌가 때마침 생겼다. 염주를 차게 되면 '알아차림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염주는 과유불급, 공, 알아차림, 중용을 지키라고 외친다.



이 세 가지 습관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메타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산다. 대개는 둘 중에 하나다. 믿음으로 바뀌면 구원을 받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행위다.


내 친구 P는 38년째 

꼬불거리는 앞머리를 '엄지와 검지'로 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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