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모든 것이 유통입니다. 카페는 커피를 팔고 역술원은 사주상담을 팔고 직장인은 노동력을 팝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제품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못 팔게 없고 못살게 없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컴퓨터를 선택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기업에는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팔던지 본질은 '사고 파는 일'입니다.
제가 20대 초반에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돈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수익이 좋다는 막일 일당이 대학생들 기준으로 1~2만 원 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거나 목돈이 좀 필요하다 싶으면 소위 노가다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제 몸에 장착돼있던 창업의 유전자가 있었나 봅니다. 남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직접 팔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거리에 식당이 많으니 수세미를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즉시 친구와 경동시장에 가서 수세미를 한 묶음 사서 식당마다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걸어서 방문판매를 했는데 결국 단 한 장도 팔지 못했습니다. 고생만 잔뜩 하고 수익은 제로인 상황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인분이 말해주길 식당 같은 곳은 물건을 대주는 곳이 있어서 업체에 한꺼번에 싸게 구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데로 팔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유통구조가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고민 끝에 수세미는 안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금액으로도 만족도가 높은 책을 팔기로 했습니다. 수세미에서 책으로 제품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다음 날 무작정 청계천 헌책방으로 가서 수소문 끝에 저렴하게 새 책(?)을 파는 곳을 소개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서점에서 파는 책도 있지만 편집이 조금 어설픈 덤핑 책도 같이 유통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쇼핑백 하나 가득 채우면 책이 10~12권쯤 들어갔습니다. 이 책을 들고 거리에 가게마다 들어가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미용실도 가고 화장품 가게도 가고 학원도 들어갔습니다. 나름 판매 레퍼토리를 짜서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홍보를 했습니다. 가격을 정가보다 60~70프로 정도로 책정하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쇼핑백에 들고 온 책이 다 나갔습니다. 몇 시간 만에 막일보다 배이상 벌게 되니 그야말로 노다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둘이 하다가 방학에는 후배들까지 알바를 시킬 정도로 커졌습니다. 판매 가격도 500원 단위로 바꿔가며 팔아보니 얼마가 가장 적정한지 현장에서 바로 터득이 되었습니다. 비록 옛날이야기지만 장사란 걸 책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는 사람은 똑같은데
어떤 건 하나도 못 팔고, 어떤 건 잘 팔리고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어디 가서 팔아야 되는지? 가장 기본적인 고민은 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
처음 1인 기업을 시작하면서 회사에 컴퓨터를 팔겠다고 정했는데 아는 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어느 정도 컴퓨터 수준이었냐면 사용할 줄만 알지 컴퓨터와 프린터들에 끼워진 선들을 한번 빼면 다시 꼽는 걸 무서워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컴퓨터가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거나 엔지니어가 있으니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상태에서 남에게 컴퓨터를 판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컴퓨터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파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부딪쳐보기로 했습니다. 가격비교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품마다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부품별로 하나하나 공부하고 모르는 건 외웠습니다. 그렇게 낯선 퍼즐을 맞춰가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 윤곽이 잡혔습니다. 고객들은 대부분 전산 담당자들이라 나름 전문가들입니다. 그래서 어설프게 아는 척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직접 미팅이라도 하는 날이면 밑천이 다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소한 파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가진 제품에 대해서 막히는 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전화를 하면서도 모를 때는 비교 사이트에 설명을 봐가면서 통화를 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고객은 제가 전산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그렇게라도 부족한 걸 채워나가다 보니 어느덧 컴퓨터의 변화와 흐름을 남보다 빠르게 알 수 있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팔려고 선택한 제품이
익히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청소년 시절에 단어장 외우듯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
처음에는 아무도 먼저 찾아주지 않습니다. 물론 업계에서 어느 정도 업력이 생기면 고객사에서 다른 업체를 소개해주는 일이 생깁니다. 실제 소개받아서 거래하는 회사가 오히려 주 고객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점에서 시작을 합니다. 저는 영업을 할 때 제일 먼저 취업사이트에 나와있는 예비 고객사가 될만한 회사들을 추려서 영업일지를 만듭니다. 거래처명, 업종, 사원수, 지역 등을 토대로 작성하고 날짜별로 컨텍할 내용을 적기 위한 칸을 만들어 둡니다. 그리고 전화해서 전산 담당자를 찾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팔기 때문에 전산 담당자가 실제 구매담당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취급하는 아이템별로 담당자 구분이 되어있을 겁니다. 크게는 총무팀이나 구매팀, 전산팀으로 나뉘게 되지만 고객사마다 세부 구매담당자가 있어서 자신이 취급하는 제품의 담당자가 소속돼 있는 부서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담당자와 연결이 되면 저희 회사를 소개하고 메일로 견적서를 주겠다고 합니다. 보통은 보내달라고 하지만 거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땐 비교견적서라도 받아두는 게 나중에 회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몇 달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3할 정도의 타율(?)로 반응이 옵니다. 제가 이 일을 한지가 17년이 되었습니다만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처럼 영업방식이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작정 회사를 방문해서 구매담당자를 만나야만 소통이 되던 때였습니다. 지금이야 그렇게는 안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맞댄다는 점에서 효과가 높긴 했습니다.
2004년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 첫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영업을 하러 강남 테헤란로의 위치한 회사들을 방문하다가 P라는 업체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산 담당자한테 인사를 하면서 저희 회사에 대한 소개를 했는데 그 업체가 구매시점이 되어서 그런지 담당자가 관심 있게 물어보게 되어 자연스레 상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소 깐깐해 보이는 성향의 담당자였지만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견적이 오고 가고 결국 이천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첫 영업실적이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담당자는 다른 업체의 담당자보다 유독 긴장되고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그렇게 거래를 지속하다가 담당자는 P업체를 떠나게 되었고 그 후로 형님, 동생 하다가 저희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영업을 팔 년 정도 해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좁고 인연의 끈이 어디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못 파는 물건은 없다 못 파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매월 말에 영업회의를 합니다. 매출실적을 보고 그 달의 실적을 분석합니다. 매출이 높을 때는 높은 데로 낮을 때는 낮은 데로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의 영업방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코로나나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같은 시장을 두고도 누구는 잘되고 누구는 안됩니다. 결국 제품이나 시장 상황보다도 파는 사람의 문제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객이 말합니다. 요즘 어려워서 통 못 사고 있다고. 그러나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구매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보다 더 유능하거나 친밀한 거래처 영업 담당자에게 사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유능한 영업사원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