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는 페이지를, 고수는 메시지를 채운다

by 버티기

내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의 생각은 단순했다.

퇴직 후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겪게 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기회로 삼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동기가 빈약하다는 느낌이었고, 의지를 견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브런치는 오래전부터 살금살금 다녀가면서 글을 읽어오던 차여서 나름 익숙함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리 써놓았던 글 3개를 가지고 불현듯 작가신청은 해놓고도,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의 탈락 후기를 접하면서 자신감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받은 때는, 기대를 일단 접고 써놓았던 글의수정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이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구독 글을 읽어 보는 것이, 내 일정의 최우선순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쓰기 플랫폼이 필요해서 선택하고 도전하긴 했지만, 근무를 하면서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버거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공간은 얼추 만들어지지만 쪼개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글을 써보려고 할 것이다.

이제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고, 사유하는 시간도 갖고, 예측해 보기도 하고, 맛있게 표현해 보는 것’이 즐거워졌다.


브런치와 사귀면서 축복이라 생각되는 것은, 탄탄하게 구성된 수많은 글들을 돈 안 들이고 무한정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같이 이제 글 쓰기를 시작한 초보에게는 자원의 보고와도 같다.

쉬는 날 식사만 마치면 내방으로 들어가 보물창고의 이곳저곳을 살피기도 하고, 떠올려진 글감을 자판 두드려 문장으로 만들어 가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혼자서 티브이 보기도 지겨웠는지 아내가 불만 섞인 투정을 부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글쓰기 보다 어려운 난관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방법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는 자신을 돌아보는 걸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색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글을 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는데, 내 의지대로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도 나에게는 혼자만의 의지로 만들어갈 수 있는 24시간의 근무시간이 있다.

이미 빠져버린 글쓰기 연못에서 어떻게든 헤엄쳐 나갈 것이다.

“하수는 페이지를 채우고,
고수는 메시지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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