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봄은 온다
https://youtu.be/bakRMZuthJ4?si=OCYPa5jaivRsZflo
유튜브 인문학 채널 중 요즘 가장 핫한 채널로 <너진똑>이 있다.
그의 채널은 다른 유튜브 채널 공식을 모두 비껴가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영상 길이가 길다.
보통 15분 이내로 끝나는 유튜브 영상과 다르게 보통 영상 길이는 30분.
그 흔한 자극적인 콘텐츠 내용도 없는 편이다. 다루고 있는 콘텐츠도 대중적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그의 썸네일을 보면 ‘당신이 불안한 이유’, ‘모두가 내용만 알던 [변신] 완전판’, ‘데미안 완전판’, ‘문사철은 ‘진짜’ 중요할까’처럼 대부분 인문고전 책을 요약 정리하거나 현대 사회 고민과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이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그의 채널이 핫하다 표현하는 것은 구독자 및 조회수 변화다. 유튜브 채널 분석 사이트 ‘블링’에 따르면 3개월동안 구독자 상승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계단식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콘텐츠가 업로드될때마다 신규 구독자가 유입되었단 뜻이다.
그렇다면 <너진똑>에선 어떤 콘텐츠를 올렸기에 사람들이 반응한걸까? 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문학은 뭘까?
인문학이 뭐길래
인문학이 뭐냐고 묻는다면 답은 참 어렵다. 그냥 대부분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 정의 하는 것에 따라 방향성과 말하는 것이 달라지다 보니 인문학을 다루는 이들은 저마다 각자 생각한 정의를 말한다. 그중 지금은 <조승연의 탐구생활> 채널을 운영하는 조승연 대표의 세바시 강연에서 말한 인문학 정의가 가장 인상 깊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인문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Mvf2nKBL4
“문화인은 시대별로 종목별로 사람 사는 얘기. 사람이 고민을 해결했던 옛날 얘기를 고루 알고 있기 때문에, 즉 마음에 밭이 갈려있기 때문에, 문화. 영어로 Culture. 밭 갈기라는 뜻이죠. 그 밭에 상황이라는 씨가 뿌려졌을 때, 창의력이라는 나무와 아이디어라는 꽃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토양을 가진 사람이 문화인이에요.”(13:53-14:12)
그는 인문학이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 속에 있는 사람 얘기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비유와 예시 그리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 영상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의 쓸모
인문학에 대한 쓸모는 <알쓸신잡>에서 느낄 수 있다. 가족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때 부터 어떻게 힘들게 잡은 가족여행은 항상 비슷했다. 멀리멀리 차 타고 떠나서 식당에서 30분 내외로 밥 먹고, 적당한 숙소에서 자고 온다. 그 안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래 여행이 이런 건가 싶던 때, <알쓸신잡>을 봤다. 여행하며 각자 경험한 것을 식탁에서 나누고 서로 경험을 공유한다. 어쩌면 각자 현상을 보고 다른 세계로 연결 짓는 것이 인문학의 쓸모가 아닐까.
특히 어떻게 대화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주장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유시민과 정재승의 대화다. 옳고 그름, 좋다와 나쁘다 생각하는 윤리적 잣대로 명확히 자를 수 없단 것을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https://youtu.be/VFpWZETXVpg?si=AoWwuPR_q9tQ6MU8
사람들은 더 나은 곳에 가서 남들이 보지 못한 엄청난 경험을 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삶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란 인류 역사 공통된 질문 앞에서 그저 그 모든 것들은 일시적 즐거움일 뿐이다. 여행을 떠난 것의 기쁨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겠다는 선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세계 속 다양한 층위를 느끼는 경험에 있지 않을까.
오늘날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니체
인문학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철학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중적인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다.
이 둘은 현대 사회 허무주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각자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기의 이유가 아닐까. 과거 종교 세계에선 신의 절대 의지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종교 세계가 저물면서 각자 개인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자 할 때 생기는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때 쇼펜하우어는 근본적 철학적 통찰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니체는 고통을 극복해 초인이 되고자 했다. 그 방향이 어떻든 분명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방향성은 제시해 주는 듯하다.
이 두 철학자의 이야기가 많은 콘텐츠에서 소비되고 있지만 단편적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을 다루며 비교한 콘텐츠는 철학 콘텐츠를 다루는 <충코의 철학>이다. https://youtu.be/fRhnXoFqqfI?si=v3MrT_68x-_TNXk
그리고 만약 철학에 관심이 많다면, 철학이란 것도 결국 기질과 성격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어떤 철학자가 맞을지 알려주는 영상도 있다. <길 인간학연구소>는 MBTI, 혈액형, 에니어그램 등 인간 성향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다. https://youtu.be/bakRMZuthJ4?si=OCYPa5jaivRsZflo
그래서 요즘 어떤 콘텐츠가 잘 되는데?
다시 돌아와 그럼 <너진똑>은 어떤 콘텐츠를 올렸기에 많은 관심과 반응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부처, 예수, 공자 사상을 정리한 콘텐츠다. 특히 기독교 철학을 정리한 콘텐츠를 많은 반응을 얻었고 기독교 신문사에선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이 현상이 꽤 의미가 있다 생각하는 것은 대중 심리다. 지금까지 칸트와 쇼펜하우어처럼 절대자를 부정하고 내 삶의 주인이 되자는 주장이 지배적이지만 한편으론 다시 절대자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건 마치 현재의 모습과 같다 보여진다. 모든 것을 무로 돌렸을 때 창조력이 없다면 폭력이 그 질서를 잡는다는 말처럼 모든 것을 허무로 돌렸으나 그 안에 답을 찾지 못해 다시 처음부터 되집어가보고 싶은 것이 지금이지 않을까.
결국 이때 살아남는 것은 진정성과 마음이다. 최근 A.I.로 원고를 쓰는 세상 속에서도 작가가 필요한 가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A.I.는 요약하고 정리할 순 있지만 상대에게 공감해줄 순 없다. 그것은 비언어적 공감이 바탕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봄은 올 것 같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