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구 Nov 07. 2022

사랑은 내게 양자역학과 같다

확률적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관측하기 전엔 알 수 없는 그런 것.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은 섹스와 비슷하다. 둘 다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우린 결과물 때문에 그걸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모두 이 말을 듣고 "역시 파인만 씨는 재밌으셔."라며 깔깔 웃을 겁니다만 그 안에서 저는 홀로 심각해집니다. 물리학은 알 수 없는 천연 순수 100%의 문과생으로서 섹스 또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파인만 씨의 농담 같은 비유는 제게 하나도 다가올 수 없습니다. 둘 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이니까요. 


어느덧 30살이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아직 못 한 것들이 많습니다. 남들 모두 흔하게 가는 롯데월드를 가 보지 못했고, 클럽 한 번 가 본 적 없으며 술집에서 밤새도록 놀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ENFP이지만 골든 레트리버라고 다 사람에게 꼬리 흔드는 건 아니라고요! 


저는 소심한 관종이라 누가 옆구리 찌르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런 탓은 꽤 많은 편리함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휴. 나는 별생각 없는데..." 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은 놓친 적이 없었고 그 덕분인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예회 사회도 맡았습니다. 그때도 저는 "아휴. 선생님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나갔지만 그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언제나 원하는 것은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 법! 이것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얻어낸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심술궂어서 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좀처럼 주는 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성격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건 연애 부분에선 영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럴 땐 내가 차라리 고양이였으면! 누가 나 좀 망태기에 씌워 데려가면 좋겠습니다. 나이에 맞게 배워야 할 것들이 있는데 몇 가지를 놓치고 오게 되는 성격입니다. 사실 내가 고양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은 매우 적은 확률로 나타나긴 합니다. 혼자 영화를 다 보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올 때, 혼자 여행을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가게에 혼자 앉을 테이블이 없을 때, 금요일 밤에 큰 일 없이 잔잔히 시간 흘러갈 때가 그렇습니다. 허전함을 느끼려면 먼저 채움이 있어야 했을 텐데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도 뭔가 말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제게 사랑은 판타지 소설, 양자역학, 사전의 지평선 그런 것입니다. 남들은 모두 있다고 말하고 좋다고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하고 내가 관측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내게 있어 허구에 가깝습니다. 30년 넘게 관측하지 못한 건 귀납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쉽게 추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이란 생각에 잠깁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사랑하고 싶은 게 아니라 두 명이 필요한 자리에 혼자가 되어 느끼는 당혹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겁니다. 마치 게임에서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혼자 팀을 구하지 못해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외로움입니다. 


16살 때 처음으로 야동을 봐 버리고 세상 수많은 콘텐츠의 비밀을 깨닫게 된 이후, 요즘은 관측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에 대해 다시금 호기심을 품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20대엔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 왜 이제와 궁금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제 내 나이에선 소멸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고, 나는 생각보다 몸이 많이 약한 사람이고, 그래서 이제 점차 내 안의 본능이라는 것이 움직이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나는 원체 남이 옆구리를 찌르기 전엔 움직이지 않으니 이제 내 본능이 스스로 내게 와 옆구리를 찌르는 듯합니다.


어쩌면 나는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이란 것이 관측하지 못했지만 그 주변의 환경 변화를 보고 예측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이건 천체과학과 비슷합니다. 블랙홀도 그 자체로는 관측할 수 없지만 주변 환경을 보고 예측하는 것처럼요. 


그러니 내게 사랑은 소설, 양자역학,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 맞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한 이들에게 건네는 낯선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