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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May 06. 2021

아이돌 후배에게 고백받았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다. 좋아하긴 해도, 크게 덕질은 하지 않기 때문에, 티비나 짤방, 인터넷에서 간간히 보는 정도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랑 같은 학교, 거기에 같은 학과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거 실화?

내 후배로 들어온 그녀와 같은 강의까지 듣게 되었다. 그녀는 학교생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인지 연예인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와 티셔츠. 옷차림만 보아서는 주변의 대학생들과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경로로 우리 학과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내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설이나 웹툰이라면 이럴 때 함께 조별과제를 하면서 친해지는 전개겠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이유로 그녀가 수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이름 없는 주변인에서 수업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선배 1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감히 연예인에게 먼저 말을 걸만한 주변머리가 없는 나는 간간히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고, 매 수업 때마다 인사를 하면서 점차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점심 약속이 펑크가 났는지 별 약속 없으면 나한테 함께 점심 먹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약속이 없다 하고, 원래 같이 먹기로 했던 J에게는 미안하다는 문자를 몰래 보냈다. 학생식당에 같이 들어갔는데, 모두들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이 마음. ‘나 아이돌이랑 같이 밥 먹는 사이야~’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식권을 먼저 계산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밥은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연예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었다. 아이돌이란 직업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이런 평범한 대학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했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성격과 잘 맞지 않다고. 친한 사람들이랑 대학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추억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학과에서는 이미 친한 사람들이 형성이 되어 있어 새로 사람을 사귀기 힘드니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어떤 동아리가 좋을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속한 동아리에 대해 소개했다. 나는 컴퓨터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고, 컴퓨터를 잘 알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추진력이 대단했던 그녀는 점심을 먹고 바로 우리 동아리 실로 찾아왔고 동아리는 난리가 났다. 남자 선, 후배들이 모두 나를 칭송했다. 그녀의 가입 이후 동아리는 갑자기 활기차져서 동방에는 항상 사람이 넘쳤고, 술자리도 엄청 자주 가졌다. 그녀는 어색했는지 꼭 나를 낀 상태에서만 술자리에 참석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니 그녀와는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모두들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녀가 할 말이 있으니까 잠깐 나와보라고 하였다. 왜 그러지 하는 마음에 밖으로 따라 나갔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뇨. 별 일은 없고, 선배 덕분에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어요.’

‘뭘. 내가 더 고맙지,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도 모두들 고맙고, 즐거워하고 있어.’

‘아 그런가요? 대학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매일이 즐겁거든요. 선배와 함께여서 더 즐거운 거 같아요.’

‘아. 이거 영광이네.’

‘선배. 혹시 저랑 만나볼래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너무 놀랐다. 인기 아이돌인 그녀가 나한테 만나자는 말을? 그런 가능성은 생각도 못 했기에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감히 이성으로 생각해지도 못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엄청나게 고민이 되었다. 건방지게 무슨 고민이냐 싶겠지만, 나한테는 그때 여자 친구가 있었다. 여자 친구의 존재를 속일까. 잠깐 고민했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 미안. 나 여자 친구가 있어.’

‘아... 역시 그랬요. 아쉬워요. 선배’      

그다음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모르겠다. 여자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마음과 천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차 버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집에 들어온 기억이 없는 건가? 그녀에게 고백을 받은 일을 생각해보았다. 동아리 회식에서 고백을 받고.. 동아리? 나 대학 졸업한 지 꽤 됐는데...


슬프게도 나는 대학생이 아니었고, 그녀는 현실에 존재했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은 내 꿈에서만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자 친구 때문에 무려 아이돌의 고백을 거절한 게 아닌가?

이 사실을 당시 여자 친구였던 현재의 아내에게 전달하였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웬 개꿈을 꾸고 전화냐는 핀잔만 들었다. 꿈이었지만, 정말 현실 같은 상황이었는데. 나의 일편단심이 전달되지 않아 억울했다. 인셉션처럼 꿈속에 들어와 볼 수 없는 이상 아내는 계속 믿어주지 않겠지만. 나는 혼자 꿋꿋이 외쳐본다.


나는 아이돌이 사귀자고 해도, 지현이 너 때문에 거절한 사람이야!!     

(개)꿈 깨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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