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진짜 하나님은 나한테 유난히 야박하신 것 같아.
넌 딱 그만큼이야.
더 욕심내지 마.
어 어 또 또 높아지려 한다.
또 너를 드러내려는구나
어 어 그만.
뭐 이러시는 것 같아.
내가 야무지게 뭔가 해보려 작정을 하면.
제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 봐야지 하면
절대로 그건 되는 법이 없어.
그저... 조용히 나를 죽이고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딱 죽지 않을 만큼 베푸시는.
딱 죽지 않을 만큼 그때에 알맞은 친구를 보내시고
너무 어둡지 않게 살짝 빛을 보내시고
그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해주시는 것 같아.
/
나는 다시 동굴로 들어가고 있어.
당신 보내고 그랬다가 조금 나왔다 생각했는데
다시 들어가야겠어.
조용히 책 읽고 아이들 만나 수업하고
당신한테 종종 수다나 떨면서
그러다 슬프면 좀 울고
그러다 배고프면 밥 먹고
그게 낫겠어
자꾸 나와서 돌아다니니 여기저기 다쳐
무섭다 이제
/
내가 어쩔까 봐 주님은 딱 그만큼은 채우셔
여기로 내 일터를 옮긴 후
매일 세네 번씩 나를 쳐다보고 인사하고 가던 꼬맹이 있었잖아.
수업을 오는 것도 아닌 그 아이는
유리문 앞에 서서
하나 둘 셋넷 다섯 정도 셀 동안 서서
나를 들여다 보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가곤 했었어.
그러니
나는 그 아이가 꼭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처럼
때론 당신처럼
그렇게 느껴졌지.
잘 있나
괜찮나
/
그런데 또 하나 생겼어.
초1 남자아인데.
한 달 수업하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하면 얘는 책을 싫어하겠다 싶어
다음에 좀 더 크면 오라고 했지.
책을 좋아하는 아인데
교제를 하려고 하면 전혀 안 하거든
교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래서 그렇게 보냈는데.
혹시라도 나한테 섭섭한 마음이 있으면 어쩌나 했었거든.
그런데 그 녀석이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가.
너무 귀여워.
나를 웃게 해주는 아이들.
딱 그만큼은 채우신다니까.
/
날이 노곤노곤 풀리고 황사네 미세먼지네 하고
문을 열고 싶은 나날들이 많아지니
봄바람 불면 어디론가 나들이 가고 싶던 싱숭생숭하던 그 마음이 생각이 나고
당신이랑 돌아다녔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딱 여기까지만 하고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
슬픔에 빠져있다가 내가 어찌할까 봐 걱정되시는지.
딱 그만큼은 해주셔서
나는 요즘 생애 최고로 바빠.
정말 날마다 시간을 재면서 살지.
이문구 작가의 '유자소전'을 중학생들이랑 같이 읽었는데
거기 보니 충청도 사투리 중에 '개갈 안 난다'는 말이 있대.
그 말은 보통 '말이' 맺고 끊는 맛이 없다거나, 섞갈리거나, 요령부득이다.
'뜻이' 가당치 않거나, 막연하거나, 어림도 없다. '일이'매동 그러 지지 않거나,
매듭이 나지 않거나, 마무리가 없다. '짓이'칠칠치 못하거나, 갈피가 없거나,
결과가 예측 불허다, 따위와 비스름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정도의 뜻이라는데
내 이 개갈 안나는 인생
개갈 안나는 통에 영 개갈 안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