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어 오던 퇴사를 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감정보다 생각이 더 많이 남았다. 나는 그동안 정말 나아가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나아간다고 믿으면서 오래 버티고 있었던 걸까. 이번 일을 지나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그거였다.
돌이켜보면 이번 퇴사는 회사를 그만둔 사건이라기보다, 내가 붙잡고 있던 방향을 다시 점검한 일이었다.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버틴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버티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그 선택이 더 맞는 방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은 시간을 들일수록 가능성이 커지지만, 어떤 일은 시간을 들일수록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 더 분명해진다. 이번에는 후자에 가까웠다.
나는 원래 버티는 사람이라기보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쉽게 정리하면 안 될 것 같았고, 조금만 더 해보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다음 수정안까지만 보면 될 것 같았고, 한 번만 더 구조를 손보면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버티고 있다고 느끼기보다, 여전히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아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무언가를 해보고 있는 상태였지만, 실제로는 나아가기 위한 조정보다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었다. 그 차이는 안에 있을 때는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는다. 멈추면 포기하는 것 같고, 계속 손을 대고 있으면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안 되는 걸 몰라서 붙잡는 게 아니라, 멈춰야 할 시점보다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먼저 보게 만드는 구조 안에서 더 오래 버티게 된다.
예전에는 버티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버티는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방향이 맞아야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 앞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버팀도 의미를 가진다. 반대로 방향이 어긋난 상태에서의 버팀은 실력이 아니라 소모에 가까워질 때가 있다.
잘되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다음이 생기고, 해볼수록 감이 온다. 작은 반응이라도 이어지고, 내가 이 안에서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남는다. 반대로 잘되지 않는 일은 계속 힘으로 밀어야 한다. 잠깐만 손을 놓아도 멈출 것 같고,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이 일을 끌고 가는 건지, 이 일이 나를 붙잡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도 있다. 결국 나는 잘하는 걸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한테 맞는 방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맞는 방식이 나한테도 맞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버티면서 길을 만들 수 있지만, 나는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 있을 때 더 힘이 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번에는 한 번 더 밀어붙여봤고, 그래서 오히려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이유도 단순하지 않았다. 일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조금만 더 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계속 가는 선택이 멈추는 선택보다 더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기준 안에 오래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쪽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기준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포기라기보다 정리에 가까웠다. 안 맞는 방향을 계속 붙잡기보다, 나한테 맞는 방향으로 다시 가보기로 한 선택이었다. 아직 다음 답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는 버텨야 하는 일보다, 나아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쪽이 나한테 더 맞다.
이번 일을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힘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였고, 더 정확히는 무엇을 기준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