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퇴사를 결심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다. 드라마처럼 어떤 사건 하나로 모든 마음이 정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이미 여러 번 미루고 있던 판단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하는 쪽에 가깝다. 겉으로는 계속 다니고 있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다른 종류의 생각이 오래 쌓이고 있다.
퇴사는 감정으로 내리는 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그만두지는 않는다. 회사가 싫은 날도 있고, 일이 안 맞는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웬만하면 익숙한 쪽에 남는다. 이미 알고 있는 구조 안에 있는 편이, 낯선 선택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는 보통 한 번에 결정되지 않는다. 대신 계속 미뤄진다. 지금 나가도 되는지, 조금만 더 보면 달라질 수 있는지, 여기서 접으면 너무 빨리 포기하는 건 아닌지 같은 생각이 반복된다. 그 사이에서 결론은 나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지난다. 바깥에서 보면 멀쩡하게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판단이 흔들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다만 바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확신이 없어서라기보다 애매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하면 나아질 것 같고, 지금 나가면 아쉬울 것 같고,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계속 붙는다. 그래서 사람은 명확해서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애매해서 더 오래 남는다. 문제는 이 애매함이 개인의 우유부단함이라기보다, 판단을 계속 유예하게 만드는 구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나도 이번에 오래 버틴 이유가 비슷했다.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보려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 것도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잘 풀리지 않던 시간이 언젠가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가능성을 기다린 시간 역시 길었다. 어쩌면 나는 일을 버틴 게 아니라, 그 일이 바뀔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다림에도 유효기간은 있다. 계속 지켜보면서 버틸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이 달라진다. 더 해보면 될 것 같은지가 아니라, 이걸 계속 가져가는 게 맞는지 보게 된다. 버틸 수 있는지와 계속 가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막상 그 안에 있을 때는 그 둘이 자주 섞여 보인다.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곧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담담했던 날들이 있었다. 특별히 크게 터진 일은 없었는데도,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이 일을 더 잘해내는 방법보다, 이 일을 계속 들고 가는 게 맞는지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문제가 일의 난이도가 아니라, 내가 이미 다른 기준으로 상황을 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는 순간은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기준이 넘어가는 순간에 가깝다. 이미 쌓여 있던 판단이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정리된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게 아니라, 이미 끝나가고 있던 결론을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퇴사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미뤄진 판단이 더는 미뤄지지 않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내가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충분히 오래 참고, 충분히 많이 보려고 했던 쪽에 가까웠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판단을 끝까지 미루게 만드는 구조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