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보는 사람은 더 늦게 놓는다

by Poroom

기획자는 방향을 늦게 바꾸는 편이다. 판단이 느려서라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보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를 바꾸면 달라질 수 있는지, 어떤 조건을 손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계속 보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원래 기획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조건을 조정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일에 가깝다. 가설을 세우고, 실행해보고,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도 쉽게 접지 않는다. 조금만 더 보면 데이터가 쌓일 것 같고, 구조를 조금만 바꾸면 반응이 달라질 것 같고,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가능성을 보는 능력은 원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산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어느 순간부터 판단을 늦추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다. 안 되는 이유도 보이지만, 될 수도 있는 이유도 같이 보인다. 그러니 결론을 내리기보다 계속 조정해보게 된다. 명확하게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가 가장 오래 간다.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계속 이어질수록 사람은 더 오래 붙잡게 된다.


나도 이번에 그랬다. 단순히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가 문제인지 나눠서 봤고, 바꿀 수 있는 지점들을 계속 찾았다. 회의에서는 수정 포인트가 보였고, 실행 단계에서는 다시 손볼 수 있는 부분이 보였다. 그때의 나는 버티고 있다고 느끼기보다, 여전히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각이 달라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가기 위한 설계인지, 아니면 지금 상태를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관리인지 구분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지만, 방향은 전혀 다르다. 설계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구조를 바꾸는 일이고, 유지는 지금 상태를 겨우 굴러가게 붙드는 일에 가깝다.


이 차이를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기획자는 더 그렇다. 늘 ‘조금 더 해볼 수 있다’는 선택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이 있고, 바꿔볼 수 있는 요소가 있고, 기다려볼 수 있는 시간도 남아 있다고 느껴지면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가능성을 보는 힘이 클수록, 멈춰야 할 시점도 더 뒤로 밀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능성을 보는 능력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디까지가 조정이고 어디부터가 지연인지 구분해주는 기준이 필요하다. 구조 없이 가능성만 보게 되면, 판단은 자꾸 뒤로 밀리고 노력은 계속 투입된다. 그러다 보면 문제는 더 이상 일 자체가 아니라, 결론을 미루게 만드는 방식이 된다.


실제로 애매한 상태는 사람을 오래 붙잡는다. 완전히 틀렸다면 오히려 빠르게 접을 수 있다. 그런데 조금은 될 것 같고, 아주 조금은 살아 있는 반응이 있고, 손보면 나아질 수도 있다는 감각이 남아 있으면, 사람은 그 사이에서 오래 머문다. 기획자는 그 미세한 가능성을 읽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 더 그렇다. 장점이 곧 지연의 원인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방향을 늦게 바꾼다. 단순히 미련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나눠 보고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쉽게 ‘끝’이라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조정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 해보면 되는 문제와, 방향을 바꿔야 하는 문제는 다르다. 그 구분이 보이지 않으면 가능성은 희망이 아니라 지연이 된다.


이번 일을 지나면서 그걸 늦게 알아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잘 안 되는 걸 끝까지 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어디에서 잘될 수 있는지를 보는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 문제는 내 성향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는 힘을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려주는 구조가 없었다는 데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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