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말을 오래 믿었다. 그게 맞는 태도라고 생각했고, 중간에 멈추는 일은 쉽게 포기로 받아들였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끌고 가는 것,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런 말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당연한 기준처럼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준들이 늘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고 믿고 버텼는데, 결과가 좋아지기보다는 점점 나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준 자체를 의심하기보다, 내가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웠다. 문제가 상황에 있는지, 기준에 있는지 보기보다 먼저 내 태도를 돌아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강한 구조였다. 끝까지 가는 사람이 성실하고, 멈추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구조였다. 그 안에서는 방향을 바꾸는 판단보다, 버티는 선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러니 사람은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기준을 바꾸지 못한다. 이미 맞지 않는다는 감각이 생겨도, 그 감각보다 버텨야 한다는 말이 더 크게 작동한다.
나도 그 안에 오래 있었다. 잘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보려고 했고, 잘 풀리지 않던 시기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한테 맞는지, 지금 상황에 맞는지보다, 여기서 멈추는 선택이 책임감 없어 보이지는 않을지를 더 먼저 생각했다. 판단 기준이 바깥에 있었던 셈이다.
회의를 거듭하고, 수정안을 쌓고, 다시 방향을 조정하면서도 이상하게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이걸 정말 계속 가져가는 게 맞는지보다, 여기서 멈추면 너무 빨리 접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가 더 먼저 떠올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일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 상황 판단보다 우선하는 기준으로 내 안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완전히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일은 실제로 끝까지 가는 힘이 필요하다. 중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태도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모든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 시작하면 오히려 판단을 흐린다. 지금 멈추는 게 맞는 일에도 계속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방향을 바꾸는 게 더 나은 선택일 때도 그걸 포기로 오해하게 만든다.
결국 기준은 상황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외부에서 오래 주입된 기준은 대부분 그렇게 유연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 하고,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기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식의 문장은 단순하고 강하다. 그래서 복잡한 현실보다 먼저 떠오른다. 문제는 그 단순한 문장이 실제 상황을 설명해주지 못할 때다.
이번 일을 지나면서 그걸 더 분명히 보게 됐다. 나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안해했고, 그 불안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새로운 생각을 배웠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걸 더 이상 무시하지 않게 됐다는 쪽에 가깝다. 끝까지 가는 게 맞을 때도 있지만, 멈추거나 바꾸는 게 더 맞을 때도 있다. 예전보다 그 차이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됐다.
이제는 당연하다고 배운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한테도 맞는 말인지, 지금 상황에도 맞는 기준인지 한 번 더 보려고 한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기준이 늘 나를 지켜주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그 기준이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이미 어긋난 방향 안에 더 오래 서 있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내가 유난히 약해서 흔들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기준을 너무 성실하게 지키려 했던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기준이 상황보다 먼저 작동할 때, 성실함은 판단을 돕는 힘이 아니라 판단을 흐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버티고 있느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