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교감과 공감

금요일 늦은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후쿠와 갔던 2차 병원이었다. 이틀 전 유전자를 증폭해서 병의 유무를 확인하는 PCR 검사를 했는데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온 연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음성이 나왔다. 이제 2주 뒤 키트 검사, 한 달 뒤 키트 검사 총 두 차례의 키트 검사를 할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PCR 검사 때문에 밖에서 대기하던 중 진료실에서 들리던 후쿠의 외마디 비명,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울음소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서서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과가 다행히 음성이니 위로를 받았지만 이제 한고비 넘긴 셈이다.


2주 뒤에 진행하는 키트 검사에서도 음성 반응을 받았고, 초음파 검사 권유를 받아 얼떨결에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 이제 한 달 뒤의 마지막 키트 검사만 남았다.


그동안 후쿠가 울고 날뛰면 조마조마했는데 아프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폭식이라도 좋으니 밥 좀 팍팍 먹었으면 좋겠고 세상모르고 장난감에 매달리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었다. 하루 종일 자면 마음을 졸인다. 그러면서도 내 팔을 베고 자는 모습은 무엇보다 행복한 보통의 일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후쿠와 놀 때 가족들은 내가 행복해 보이고 웃고 있는다고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느낌이 나지 않은데, 기쁘다는 감각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다는 건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언니 J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후쿠는 초반에만 낯을 가리더니 이내 언니의 무릎에도 오르고 장난도 쳤다. 고양이가 무섭다던 언니도 어느새 적극적으로 후쿠와 놀고 있었다. 이 모습을 찍어서 보내줬다. 그 언니는 자신이 웃는지도 몰랐다며, 이렇게 좋아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후쿠와 교감하는 건 겨울날 고드름이 자라는 것처럼,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도.


후쿠를 들이고 나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약의 용량을 낮췄다. 그동안 잠 못 이뤄서 수면을 유도하는 약을 먹었다. 저녁 약이 너무 독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이내 각성을 도와주는 약을 먹었다. 후쿠가 오고 나서는 반강제 기상과 취침 덕분에 약과는 한 걸음 떨어졌다. 예전에는 내 맘대로 하루에 두 봉지를 먹고 잠에 취해 곯아떨어지려 한 적도 많아 부족한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효과도 안정적이다.


후쿠의 백혈병 사태로 너무 슬펐을 때는 무기력이 나를 덮쳐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글도 손에서 놨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좌절감도, 실망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념무상, 가끔의 걱정이 반복. 그리고 가끔 길에서 노트북 앞에서 세수하다 눈물이 흐르는 정도로 나아졌다. 그러나 안에서 곪은 건 밖으로 터지기 마련인지 나도 모르게 저녁 약을 내 맘대로 마구잡이로 먹었다. 잊고 싶었고 지우고 싶었다. 그래도 새벽 댓바람부터 울며 나를 깨우는 녀석 덕분에 정신을 되찾았다. 좌절은 매일 해주는 빗질로 죽은 털을 솎아 내는 것처럼 툴툴 털어냈다.


KakaoTalk_20210410_221945852.jpg 지친 어느 날,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는데 후쿠가 품에 파고 들어 잠을 청했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뒤통수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을 봐달라는 후쿠의 간청이다. 그럼 의자에서 일어나서 몸을 돌리면 두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손을 장난감 삼아서 껴안고 무는 녀석을 보는 건 담담하면서도 간질거리는 일이다.


하루는 엉덩이를 떼고 싶지 않아서 우는 소리를 무시하고 글을 썼다. 유튜브에서도 울 때 반응하면 그 행동을 강화시키는 거라고도 했다. 덤덤히 내 할 일을 하는데 후쿠의 울음소리가 바뀐다. 날카롭다가 애처롭다가 이내 목을 끓는 소리로 변주한다. 잠깐의 정적. 후쿠는 내 뒤에서 폴짝 뛰어서 내 등에 어부바를 시도한다. 어깨를 앞발로 잡고 목을 핥는다. 질투하는 노트북에 발톱을 세워 긁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국 난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집사가 될 수밖에 없어 웃음이 절로 난다.


KakaoTalk_20210410_221901841.jpg 후쿠는 내 팔에 몸을 기대는 걸 좋아한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런 반응을 보인다.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괜찮지 않아요?"

개보다는 용이할 수도 있다. 매일 산책도 안 해도 되고 단모종은 미용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양이도 혼자 있으면 외롭다. 내가 외출, 부득이하게 늦게 들어간 날, 현관을 열기가 무섭게 후쿠는 쪼르르 달려와 나를 향해 우렁차게 운다. 표현을 못하는 것뿐이지 고양이도 집사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손을 씻는다. 그럼 후쿠는 그 사이 방 한가운데서 몸을 뒤집으며 애교를 피운다. 후쿠의 시계는 집사가 있을 때 다시 째깍 움직인다. 놀아줘야 하니까 우울할 시간이 없다.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녀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통하고,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쌍방향적인 관계.

그것이 나와 후쿠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다.


KakaoTalk_20210410_221835799.jpg 멋진 포즈



덧.

완전히 음성 판정을 받았단 소식을 남기고 싶지만 최종 확인은 4월 말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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