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를 다지다
후쿠의 삶에 내가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처럼 나의 삶에도 후쿠의 영역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그렇기에 후쿠의 컨디션에 따라서 글을 열심히 쓰기도 하고 못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한다.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반추했다. 후쿠를 들이는 것부터 나는 변화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후쿠 입양이 그 첫 번째 단계였다. 그 다음에는 할머니와 재래시장에 가서 뽀글 파마를 했다. 최근에는 성형 수술도 했다. 어떻게든 변화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고 있다.
‘이거 하나 바꾸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 기저에는 이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바람 단 하나를 뿌리에 둔다.
그러던 중 후쿠의 잦은 병은 변화 이전의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후쿠는 생각보다 잔병 치레가 많았다. 구조 당시에도 결막염을 앓았다. 나를 만나고 나서도 결막염이 도져서 초보 집사는 안약을 넣느라 애를 먹었다. 호흡기 질환을 앓아서 항생제를 먹었고 갓 5개월이 넘은 꼬마에게 치주염이 생겨 또 다시 약을 먹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적게는 만 원, 많게는 20만 원 이상씩 깨진다. 이겨내고 일해야 하는 의무감이 든다. 스마트폰 외에는 할부와 담을 쌓고 사는데 2~3개월 할부로 턱턱 긁는다. 돈을 벌어서 생계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피부에 와닿는다. 그렇다고 비참하지 않다. 객관적인 하나의 사실로 체감될 뿐이다.
그후 지갑 사정보다 더 큰 동력이 생겼다. 더 큰 병이 초래한 무력감, 해봤자 소용 없다는 좌절감에 짓눌려 고생했지만 이내 생각이 전환되었다. 물질적인, 현실적인 문제 이면의 정신적인 의지에 관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후쿠가 더 오래 살 수 있다. 따끔한 바늘로 손등을 찔렀을 때, 넘어질 때 아프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먹게 되었다. 내가 포기하면 후쿠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를 강요당한다. 후쿠는 살고 싶은 고양이다. 살기 위해 혼자서 종로구 화단에서 부르짖어 목숨을 부지한 고양이다. 나는 후쿠보다 먼저 포기할 권리가 없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병마와 싸우는 후쿠 자신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간절히 바라며 무릎 꿇고 기도했다. 인내력과 지구력을 허락해 달라고. 장기간 싸움에 먼저 나가 떨어지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새삼 이 간절함은 내 인생과 삶을 관통하는 인생의 과업에도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다. 로또처럼 벼락 부자가 되는 일이 아닌 이상 큰 일은 인내력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문제 역시 인내력과 지구력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 나는 부자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후쿠에게 멋진 캣타워를 선물하고 싶고 눈치 보며 살고 싶지 않아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창한 집이 아닌, 후쿠 방, 내 방 하나씩 투룸 하나 정도만 있으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이라면 원룸으로 족하다. 돈에 대한 기준이 낮아 나는 번 돈은 후쿠에게 모두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 경제적인 문제는 직장을 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끝이 쉽게 보이는 단기과제이다.
주저 앉은 무릎을 이제는 일으켜 세워야 한다. 후쿠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변화의 시작으로 들인 후쿠는 결과적으로 나를 변화시켜 주고 있다. 설령 길에서, 택시에서 눈물을 흩뿌릴지 언정 결코 물러서지 않고 물러설 수 없게 만들어줬다. 조금씩 단단하게 그리고 탄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