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백혈병
한동안 글을 못 올렸다.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에는 손하나 까딱할 수 없다. 꾸준히 쓰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이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고 때로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맡은 일을 완수해내는 것이라고들 하던데 역시나 프로가 되기엔 한참 멀었다. 동시에 그만큼 나를 엄습한 일이 감당할 수 없었다는 걸 고백하고 싶다.
내가 심한 우울증과 조울증과 그동안 후쿠와의 겪었던 소소한 갈등은 먼지 터럭만큼이나 가벼운 일로 치부해도 될 정도로 큰일이 터졌다.
당시 5개월이 넘었을 때의 일이다. 고양이는 6개월 전후를 기점으로 발정기가 온다. 보통 발정기가 오기 전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들었다. 2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후쿠의 중성화 수술 날이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후쿠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여러 설명을 들으며, 사람이 수술하는 것처럼 보호자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데 무척 마음이 무거웠다. 남들 다 하는 수술인데도 착잡한 마음은 이루 다할 수 없었다.
설명을 다 듣고 이동가방 채 건넨 후 동물 병원을 나왔다. 약 3시간 뒤에 데려가라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혼자 있기 겁이 나 그 길로 본가로 갔다. 아무 일 없을 거라며 마음을 다독이며 창밖의 가로수를 물끄러미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처럼 할머니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동생은 내게 주려고 사놓은 과자와 초콜릿을 줬다. 애써 감정을 외면하며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때 손목에 차고 있던 밴드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어디에 던져놨는지 도통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보통 전화라면 끊기고도 남았지만 전화는 집요했다. 다행히 놓치지 않고 전화를 받았는데 동물 병원이었다.
“피검사 결과 백혈병이 나와서 지금 수술을 할 수 없어요.”
통화를 하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세한 건 내원하면 안내하겠다는 것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얼빠진 사람처럼 아무 말하지 않고 외투를 걸쳤다. 앞으로 나가야 할 걸음은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깜짝 놀라며 자초지종을 묻는 할머니와 동생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후쿠 백혈병이래.”
할머니는 진절머리를 내셨다.
“하필 걸려도 그런 병을 걸리냐!”
지병을 앓고 계신 할머니는 누구보다 후쿠의 상황에 이입하시며 답답해하셨다.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
“네가 그러면 어떡해. 일단은 데리고 와야지! 네가 마음 단단히 먹어.”
할머니의 눈도 이내 촉촉해졌고 휴지로 눈가를 닦으셨다. 나는 후들거리는 마음과 다리를 겨우 일으켜 세웠다. 집을 나와서 동물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갈 자신이 없어서 택시로 이동했다. 가는 내내 마스크 밑으로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렀고 검색을 할수록 절망적이었다.
10마리 중에 한 마리 꼴로 걸리는 고양이 백혈병은 완치가 없다. 3~5년 이내에 치사율 80% 이상에 달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입양 글에 자주 언급되는 '범백'과는 다른 질병이다. 사람으로 치면 에이즈와 비슷하다. 이제 반년 산 고양이가, 그것도 하필 후쿠가 앓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은 갈가리 찢겨나갔다.
영업이 끝난 병원은 한산했다. 진료실로 들어가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키트 검사 결과 고양이 백혈병 약한 양성 반응에 빈혈기가 있다고 했다. 키트에 희미한 선이 생겼고 시간이 흘러서 선이 지워졌다고 했다. 그나마 희망인 건 약한 양성이었다는 점이고 고양이 백혈병은 단번에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설명을 듣다가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울었고 수의사 선생님은 휴지를 건넸다.
그렇게 나는 후쿠와 2차 병원으로 가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후쿠가 나왔다. 동공이 확장된 채로 축 처진 모습은 생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후쿠야 왜 이렇게 차분해? 호기심쟁이 어디 갔어?’라며 장난을 쳤지만 후쿠는 잠자코 이동장 안에 가만히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일에 2차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텀을 두고 가라는 의사의 말에 먹은 게 모두 얹힌 기분이었다. 제발 키트에 오류가 있길 바랐다.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렀다.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미안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언니가 그날 밤 집에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후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날쌘돌이가 되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절망적이었고 괴로웠다. 낚싯대를 흔들길 바라는 후쿠에게 얼굴을 비비며 울먹거리며 호소했다.
‘후쿠야. 내가 중년이 되는 모습 봐줘야지.’
비상약을 두 봉지, 저녁 약을 세 봉지 먹었다. 잠에 취했지만 이대로 깨고 싶지 않았다. 후쿠가 나보다 먼저 고양이 별에 갈 거는 알고 있지만 이렇게 일찍 마음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차라리 내가 먼저 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부터 카드를 긁었다. 만약 정말 백혈병이라면 시한부 삶을 사는 것이다. 적어도 못해줬다는 마음은 들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 용품과 간식을 사들였다. 물건이 하나하나 도착할 때가 되었을 즈음이었다. 언니가 후쿠와 나를 위해 연차를 썼다. 작은 고양이 후쿠와 함께 2차 병원에 가는 날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