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것이, 묻어서 해결될 수 있다면 화낼 사람도 없고 슬플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감정이지만 나를 벗어나서 흘러가야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내가 매일 당연하게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개기름이다. 그다음으로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자는 동안 쌓인 개기름은 아침 세수로 날려 보낼 수 있지만 감정은 어떻게 씻어낼까. 쌓이다 쌓이다 갑자기 터진다. 계기는 매번 다르고 종잡을 수 없어서 이런 게 생리전증후군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매일 회사에서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약속 시간을 못 지키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몸빵 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남의 감정은 잘 받아주는데 내 감정 표출하기는 힘들다. 쌓인 감정들을 표현하기에는 그동안 너무 쌓여서 이제는 표현한다면 각 잡고 말로 팰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상상으로는 수십 번 팼다. 하지만 슈퍼에고가 이드보다 너무 발달을 했던 걸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걱정쟁이라서 다니는 업종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주변만을 맴돈 채 쓰기 시작했다. 종이에다 꾹꾹 눌러쓰고 겉장은 버린 채 뒷면에 글자 모양만 남은 부분을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1시간 넘게 끙끙거리며 쓰고 나서 자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면 길면 3분이고 보통 2분이다. 소진해버린 한 시간이 이렇게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게 아쉽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개운한 느낌도 없고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적었다. 그러다가 연속 며칠을 쓰지 못했다. 그랬더니 가슴이 꾹 막힌 기분이었다. 반지하 화장실 매일 청소하면 겨우 깨끗하지만 방치하면 어느새 여기저기 곰팡이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며 이런 말을 들었다.
“본인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야.”
단박에 반박했다.
“아니에요. 그리고 설령 그런다고 해도 제가 싫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는 틀리다. 감정을 말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그때의 대답은 유효하지만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면 그 자체로는 인정하고 싶다. 말로는 어렵지만 글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표현하고 씻어 내버리는 것. 감정을 끊임없이 묻고 다시 물어서 오늘 하루 분의 개기름을 씻어내듯이 클렌징하듯이 말이다. 우수한 세정력을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글로 클렌징을 하면, 돌연폭발해서 엄한 사람 잡는 횟수도 줄고, 나도 후회할 거리가 조금은 줄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