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너의 세계

아기 고양이는 말 그대로 아기 같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입에 넣기에 바쁘다. 그것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당연히 모른다. 갖고 놀다가 물다가 순식간에 꿀꺽한다. 맛동산(고양이의 응가, 맛동산 과자와 비슷하다.)에 머리카락이 섞여 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양이 털 때문에 청소를 해아 한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고양이의 삶과 건강을 위해서 집 청소는 필수다.


집고양이는 집이 삶의 전부다. 내 삶의 시작과 끝, 한계를 알 수 없는 것과 달리 아주 명확하고 가시적이다. 지금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봤을 때, 그것이 한 생명이 인생 전부를 걸쳐 살아야 할 공간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IMG_0751.JPG 아기 고양이 후쿠, 입에 넣어도 될 것과 안 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한 손에 물티슈를 들었다. 침대 밑이나 장롱 밑, 구석진 데까지 싹싹 닦는다. 먼지가 묻어나는 걸 보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먼지 소굴에서 용케 살아남았구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닦고 또 닦는다. 어떨 때는 등에 살짝 땀이 고일 때도 있다. 청소한다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끝났을 때는 이온음료를 마신 것처럼 청량하다. 드디어 사람 사는 방으로 돌아온 순간에 벅찬 감동이 인 적도 있다.


청소를 위해서 가장 먼저 청소 도구를 추가로 샀다. 요리나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청소도 장비빨이다. 물티슈와 빗자루로는 한계가 있다. 밀대를 사고 청소포를 샀다. 조금 돈을 더 들여서 돌돌이도 하나 더 마련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장인이 아니니까 도구를 가린다.


일단 눈길이 닿는 곳에 가까이에 청소도구를 뒀다. 한동안은 청소 도구가 나란히 서 있는 것만 봐도 짜증이 일었다. 괜히 살림을 늘렸구나 싶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소를 했다. 고양이를 위해 청소했지만 결과는 나에게도 돌아왔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중 일부는 방이 상당히 어지럽다. 방이 어지러워서 정신이 어지러운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지. 식구 중 한 사람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방이 상당히 지저분하다. 어느 날, 참다 참다 폭발한 할머니는 방을 보며 큰 소리를 내셨다.

'네 방은 고물상보다도 못 해! 고물상도 종류별로 정리는 되어 있으니까!'


내 자취방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뜨끔한 마음을 감추기 바빴다. 청소와 우울증.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와도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생활공간의 방치는 우울증의 신호일지 모른다. 정말 마음이 힘들고 아프면 모든 것이 버겁다. 우리는 방치되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세상에 산다. 작은 방 하나도 그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소도 예외는 아니다. 더러워진 방은 점점 있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된다. 그런데 어디 나갈 데도 없고 나갈 의지도 없는 나는 있고 싶지 않은 공간에 서서히 나를 파묻어 간다.


IMG_0649.JPG 새 난방텐트를 점령한 후쿠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에서도 저자는 청소 하나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시작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우울증 탈출기는 청소와 일광욕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알고는 있다. 그러나 당위성을 모를 때가 많았다. 지금도 일단은 그 공간에 내가 들어가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까.


나 역시 엉망이 방에서 살다가 청소를 하게 되니 점점 기분이 나아지고 활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목적과 사명감에 의해서 움직인다고들 하는데 단순히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였다면 대충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서라면 다들 헌신적이게 되지 않는가.

‘묘생의 전부를 보낼 너의 세계니까.’


열심히 청소해도 끝이 없다. 이건 내가 어지르기도 하지만 고양이 화장실에서 쓰는 모래도 한 몫한다. 매트를 깔아도 모래와 먼지는 한없이 날린다. 내가 어지른 건 그렇게 눈꼴이 시는데 고양이가 어지른 건 괜찮다. 최근에 3만 원짜리 핸디 청소기를 샀다. 빨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예전보다 고양이 용품이 늘어난 방, 아직은 부족하지만 더 깨끗해진 방을 보면 안도감이 들고 다시금 힘을 얻는다. 소유에 대한 집착도 내려놨다. 버리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읽지도 않는, 몇 년 동안 갖고 있던 책들을 모두 중고로 팔았다. 전체 방문한 손님의 수보다 많은 컵들도 모두 중고로 팔거나 버렸다.


조금씩 나를 비워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간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사이로 언제나 그랬듯이 고양이는 제 얼굴이나 앞발을 쏙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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