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뜰 때는 뭐든지 괜찮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 전제 조건이라면. 그러나 곤두박질칠 때가 문제다. 사람도 그러지 않는가.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날 때는 역경에 부딪혔을 때다. 평온할 때야 모두가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혼자 살 땐 언제나 울고 자책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행동했다. 잘 살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했다. 혼자 공부하고 혼자 밥 먹는 건 좋아하는데 혼자 사는데 이렇게 취약할 줄이야.
나는 작년 말부터 매주 1회 저녁 7시나 8시, 총 12번의 심리상담을 받았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 주로 말하다가 어느새 내 기본적인 심리 상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MMPI 같은 심리 검사도 받았다.
검사 결과를 말씀해주시기 전 선생님은 기하학적인 그림을 여러 장 보여주시며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달라고 하셨다. 데칼코마니 같은 그림, 물감을 흩뿌려놓은 그림에 대해 보이는 대로 길게 설명했다. 내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선생님은 밝게 웃으시며 안도하셨다. 내 심리 결과가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 심리 결과지를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크루아상 씨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경험치가 없고 에너지가 없어요.'
누군가로부터 '넌 못 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으면 보통은 발끈해서, '아니! 난 잘하거든?'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동안 왜 그렇게 삶이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열성적으로 시작해도 빨리 지친다. 무기력해지기도 쉽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린 시절 양육자의 부재,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나이를 표현하곤 하는 아기 시절부터 엄마가 없었다. 그래도 난, 부분적으로는 삐그덕했어도 엄마 없이 잘 컸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심리 검사 결과를 듣고 깨달았다.
'나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긴 했구나.'
경험치도 에너지도 없는 사람이 혼자 살게 되니 오죽하겠는가. 바싹 마른 겨울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온몸으로 찬 바람을 받아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고양이를 들이고 나선 조금씩 바뀌었다. 화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은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 내 얼굴이 더 환해지셨다고 했다. 방도 그 전에는 황량한 느낌이 들었는데 사람 사는 분위기가 풍긴다고도 하셨다. 언니도, 동생도, 할머니도 내가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체감하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덜 외롭다. 그러나 사람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외로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고양이와 놀면서도 가끔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너 하나 건사하겠다는 다짐이 샘솟는다.
현실의 벽은 워낙 높고 단단해서 거창한 걸 해줄 수는 없다.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면 50만 원이 넘는 캣타워를 턱턱 결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채광과 전망 좋은 집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 사진을 보면 그게 그렇게 슬플 때가 많았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창밖이 바로 담인 반지하에서 산다. 우리 집에 놀러 온 한 언니는 내게 이 집의 단점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고양이가 일광욕과 풍경을 즐기는 걸 알았다면 이사 후에 고양이를 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구조자에게도 밝혔듯이 2021년 상반기에는 이사를 가야 했다. 후술 할 예정이지만 고양이와 이사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실행력과 추진력이 좋은 언니 덕분에 순식간에 집을 구하고 이사 일정이 잡혔다. 그 결과 다음 주 수요일에 새로운 집, 반지하를 탈출해 3층으로 간다.
내가 침륜에 빠졌을 때 언니가 위로해준다.
'길에서 돌아다녔을 때보단 낫지 않아?'
그다지 와 닿진 않지만 수긍한다. 이내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지면 자기 합리화라 손가락질받을지 모르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저 먹을 것, 놀 것,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수 있으니까. 그래, 종로구 어딘지 모를 화단에서 울고 있던 그때보단 낫지 않겠냐고.
마음이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가느다란 줄이 내려온다. 거기에 매달려서 어떻게든 감정을 일으키려고 애쓴다. 줄을 잡고 아등바등하며 올라간다. 힘을 쥘수록 손바닥엔 선명한 손톱자국이 생긴다. 감정은 원래 그런 것 같다. 일단 진창에 빠지면 샤워해야 하는 것처럼 벼랑 끝에서 올라온 다음에도 티끌과 먼지는 털어야 한다. 그때 내게 돌돌이 역할, 먼지떨이를 해주는 게 책임감이다.
엄마는 강하고 가장은 듬직하다는 말이 요즘 새삼 와 닿는다. 결혼과 출산은 앞으로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을 거라서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서지 않을 것 같다.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나는 우리 가족 중에서도 가장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다. 언니처럼 장녀의 책임감이나 동생처럼 할머니에게 효를 다하지도 않는다. 그랬기에 쓰면 뱉고 달면 삼키기만 했다.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는 괴로울 때마다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했다. 울다가도 힘내려고 절치부심한다. 나는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위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마감을 받을 무렵 작가들은 종종 고양이가 아파서 마감을 못 했다며 펑크를 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양이라서가 아니라, 병원에 금방 다녀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얄팍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내가 겪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그 병원에 가기까지 있었던 험준한 과정, 마음을 쏟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오는 허무함. 할머니가 고관절이 부러지셨을 때, 언니가 수술 후에 장기에 피가 차서 재수술을 했을 때와 똑같이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언제나 정도를 모르는 나는, 감정이 앞설 때가 많고 또 그러다가 쉽게 마음 식곤 했다. 식물을 키울 때도 그랬고 공부를 할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그랬다.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양이는 단순히 감정으로 받아들이기에 큰 존재다. 마음이 식을 수도 없다. 롱런하고 서로 교감하는 관계니까. 적어도 나는 마음이 식으려야 식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저 건강하길 바란다. 아픈 아기가 끝까지 살아주길 바라는 부모의 간절함이 떠오를 때도 있다.
이 글을 쓸 때 고양이가 달려들어서 두 번이나 키보드를 엎고 갔다. 예전 같았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상하게 나열된 글자들을 지우고 내가 써야 할 것들을 이어서 써 내려간다. 조금씩 마음의 그릇도 넓어진다.
초등학생 때 점토로 그릇을 만든 적이 있다. 갑자기 크게 만들면 종이처럼 쩍 하고 갈라져버렸다. 그러면 분노를 삭이는 숨을 내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열심히 뭉갠다. 손끝에 물을 묻혀가면서 서서히 넓혀야 그릇은 망가지지 않았다. 고양이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것. 이것이 그가 내게 준 희망인 것과 동시에 내가 그를 맡은 책임감의 정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