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손등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
인터넷에서 유머러스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이제 4개월이 지난 고양이와 지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다시는 새끼 고양이를 무시하지 마라.’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속된 말로 ‘쪼렙’이다. 새끼를 희망한 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어야 가족이라는 인식이 탄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귀여운 것도 한 몫했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좌절된 첫 입양 시도는 4개월령의 고양이었고 그다음엔 마음이 급했다. 눈이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2개월 반 고양이 글을 클릭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처럼 초보라면 아깽이(아기 고양이)도 좋지만 한 살 정도 되는, 이제 갓 성묘가 되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새끼 고양이는 돌보는 입장에서 사람 아기보다는 낫다. 화장실도 가리고 배고프면 지가 알아서 밥을 먹는다. 고양이를 처음 들이고 워킹맘들의 위대함을 주변에 역설하고 다녔다.
‘새끼 고양이가 이 정도인데 아기는... 어휴.’
내가 2개월 반이 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며 초반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다. 냥바냥(고양이 따라 다름)인 점은 사전에 언급한다.
아기라는 점은 똑같아서 하루 대부분을 같이 있으며 돌봐야 한다. 정말 많이 잔다. 하루에 18시간 가까이 잔다. 그리고 깨있는 시간에는 먹고, 싸고, 놀고(주변을 탐색하고) 단 세 가지 활동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엄청 놀아줘야 한다. 유튜브 같은 데서 고양이 행동에 대한 영상을 보면 15분에서 20분이라고들 하는데 우리 고양이는 4시간 이상이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대충 흔들면 반응도 하지 않았다.
https://brunch.co.kr/@today24/91
주변을 탐색할 때도 혹시나 다치지는 않을지, 이상한 걸 입에 넣지 않을지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 어스름이 낀 새벽에 눈이 뜨였다. 자연스레 고양이를 찾는데 화분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쟤가 저기서 뭐 하는 거지?'
가까이서 보니 테이블야자의 끝이 뜯겨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서 테이블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키우던 벽어연, 테이블야자, 금전수는 모두 본가로 보냈다. 고양이 키우는 집에서 식물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많이 운다. 단순히 시끄러워서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운,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건 구내염을 앓는 것과 비슷하다. 케첩이나 깍두기를 먹을 때는 엄청 쓰리고 침을 씁씁거려야 하지만 노상 그런 게 아니고, 나만 견디면 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면 정말 문제다. 층간소음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 고양이 우는 소리가 주변에 불편을 줄까 덜컥 겁이 난다. 특히 소심하고 걱정부터 하는 성향이라면 더욱 골치 아프다. 한 번도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는데 누군가 문에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을까, 옆에서 벽을 치지 않을까 별 상상을 다했다. 이런 건 나처럼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면서 성마른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해당되는 걸지도 모른다.
손등과 팔뚝이 남아나질 않는다. 얼마나 세게 물어야 하는지 모른다. 새끼들끼리 장난치며 물다 보면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혼자가 된 고양이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니 모른다. 손을 장난감처럼 여기지 않게 노력했지만 무는 건 어쩌겠는가. 동물병원에서도 내 손을 보며 탄식하고 할머니는 여자애 손이 그게 뭐냐며 화를 벌컥 내기도 했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또한, 새끼 고양이의 성향을 내가 파악해야 한다. 어릴수록 구조자, 임보자(임시보호자)와 짧은 기간을 보낸다. 그 사이 선호하는 걸 알아내면 베스트지만 서둘러 입양처를 찾아야 해서 디테일한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나는 2개월 반의 고양이를 맞이했는데 좋아하는 사료를 찾는 것, 식기, 놀이 패턴, 화장실 모래 등을 내가 알아냈다. 기껏 비싼 사료를 샀는데 먹지 않으면 결제금액과 실패감에 마음이 두 배로 쓰리다. 그러나 잘 먹어주면 그만큼 뿌듯해서 두 배로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감정 기복이 심할 때는 한 가지에 몰두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약으로 진정시키면 마음은 가라앉지만 동시에 의지도 사라진다. 무엇보다도 잠이 너무 와서 커피를 찾게 됐다(정신과 쌤이 커피를 마셔도 된다고 했다). 고양이의 습성과 성향을 알아가려는 탐구욕과 학구열은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는데 큰 도움을 줬다. 반려동물 유튜브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후쿠의 현재 모습과 계속 비교해가며 잘하고 있는 건 스스로를 다독이고 잘못하고 있는 건 반성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먹을지 말지, 쓸지 안 쓸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느낌이다.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을 안고 자면 일찍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소풍 가는 상상을 했지만 늦잠을 잤다. 나이가 먹을수록 감정도 무뎌져서 어디 나가면 돈 쓰고 피곤하고 개고생이라는, 초치는 마음가짐이 앞선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로 에리히 프롬은 '감탄하라'라고 말했다. 또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고흐는 사람들은 충분히 감탄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라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장기간 노출되면 일상에 집중할 수 없고 나아가 일상에 감탄할 수도 없다. 시멘트길처럼 무미건조할 따름이다.
고양이와 일상을 함께 보내면서 소소하게 벅찬다. 설렐 수 있는 있음에 절로 감사가 나온다. 고양이가 높은 데서 폴짝 뛰어내리는 것에 손뼉 치며 환하게 웃게 된다. 구슬 같은 눈동자를 보면서 감탄하고 등, 꼬리, 발목, 이마에 있는 줄무늬를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한 생명이 가진 경이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미처 알지 못한 것들. 손등은 남아나지 않고, 설정한 모닝콜보다 두 시간은 일찍 깨게 되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애정과 가치를 고양이는 품고 있다. 그것은 분명 모든 고양이에게 또렷히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