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집사가 깨달은 것
자가용 없는 집사가 고양이와 이동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택시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다니는 것. 여러 차례 동물병원을 다니면서 깨달은 점은 회사와 똑같다. 집과 동물병원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입을 딱 다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더 많은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 후쿠는 후자다. 모든 고양이가 그러하듯 이동장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뿐더러 내가 검은색 롱패딩을 입으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럼 언니와 난 자연스럽게 또다시 후쿠의 과거, 미지수 X를 생각한다.
“얘가 검은 옷 입은 사람한테 해코지당한 기억이 있는 거 아냐?”
“그러게.”
이동장에 겨우 넣어 밖을 나오면 그때부터는 냥냥 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걸어 다닐 때는 스쳐 지나가면 되기에 괜찮지만 버스나 택시에 탈 때는 난감하다. 최대한 택시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한두 정거장 거리는 버스를 이용했다.
평일 오전 버스는 출근 시간이 지난 6호선만큼이나 한산하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고요를 뚫고 냥냥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밖을 보여주며 달래 보려고 해도 서러움 가득한 울음소리는 커질 뿐이다. 깜짝 놀라 일어서면 후쿠의 소리가 조금은 잦아든다. 기사님이 눈치를 줄까 조마조마하면서,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처럼 제발 신호에 걸리지 않길 바란다. 물론 주의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두 정거정을 지나 동물병원에 들러 검진을 받고 돌아가는 길, 앉기를 포기하고 서 있었다. 점심때가 가까운지라 버스 안은 사람이 전보다 사람이 가득하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겁이 났다. 후쿠는 반 지났을 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신 할머니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민망한 사양을 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골목을 거니는데 죄책감이 밀려온다.
‘후쿠가 아픈 것보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이 난 왜 두려운 걸까.’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더 친절한 동물병원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열심히 걸어 다닌다.
본가로 향하는 어느 날, 언니가 버스를 타자고 했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서 있는 사람이 몇 있었다. 우리는 운 좋게 2인석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좀 조용하나 싶었는데 후쿠는 또다시 떠들었다. 뒤쪽에서 ‘새끼 고양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렸다. 몸이 굳는 것 같았고 당장에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당황한 나와 달리 언니는 괜찮다며 자리를 지켰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언니에게 떨리지 않냐고 물어봤다.
“내리라고 할까 봐 신경 쓰이긴 했어.”
“이동장에 넣으면 괜찮대.”
“아 그래? 뭐야. 그럼 괜히 졸았네.”
“떨리진 않았어?”
“응.”
방금 전 버스에서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다. 힘든 건 후쿠인데 왜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고. 뒤에서 새끼 고양이 소리가 들렸을 때는 누군가 화를 낼까 겁이 나고 긴장한 걸 털어놨다.
“넌 다른 사람들 시선 많이 신경 쓰잖아. 어쩔 수 없지.”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
“아냐, 더 배려하는 걸로도 볼 수 있잖아.”
언니의 마지막 말에 조금 위로받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서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듣는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생각을 하고 만다. 가랑비에 옷 젖듯 만들어진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후쿠의 건강과 상태를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는 보호자가 되고 싶다. 안하무인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정작 마음을 쏟아야 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싫을 뿐이다.
나는 시야각이 넓고 잠귀가 어두운 대신 깨어있을 때는 귀가 아주 밝다. 고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때 내 청력이 발달한 건 아닌가 싶다. 같은 반 아이들이 주어 없이 누군가를 욕할 때,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닌지 집중하기에 바빴다. 눈은 문제집을 향하고 있지만 귀는 계속 소곤거리는 쪽을 향했다. 3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분명히 나아졌다고 자부했다. 평온했을 때는 알지 못했다. 후쿠가 든 이동장을 어깨에 멨을 때, 현관을 나섰을 때, 골목을 지나 차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곳에 당도했을 때 깨달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나아졌다고 여겼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바꾸기보다는 나름 타협하며 조금씩 나아지려고 연습한다. 도보로 이동하거나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탈 땐 기사님께 허락을 먼저 구한다.
변화의 시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미숙한 모습에 자책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디디면 가랑비를 막을 수 있는 비닐우산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젖은 어깨도 어느새 뽀송뽀송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