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반려동물과 이사하기(1)

나는 참 못 미덥다

처음 독립한 집은 대학가 근처의 원룸촌에 자리했다. 집집마다 하숙과 임대한다는 표지판이 있었고, 개인정보 유출도 두렵지 않다는 듯이 떡하니 핸드폰 번호가 붙어있었다. 처음 집을 구한 기준은 '거리'였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어서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렇게 내가 구한 집은 마이 스위트 홈도 아니고 마이 홈도 아니고 그냥 홈이었다.


거리 하나만을 본 결과 방은 작았다. 잠만 잘 집이라고 여겨 채광도 나빠도 개의치 않았다. 뷰는 없었다. 창문을 열면 두 뼘 거리에 벽이 있었다. 집안에서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다. 본가와 거리는 애매했다.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였지만 내려서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가 길었다. 다리가 안 좋은 할머니는 이삿날을 제외하곤 집에 온 적이 없었다. 회사에 오래 다닐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관둘 줄은 몰랐다.


계약 만료가 6개월 남짓 남았을 때부터 이사 갈 집을 알아봤다. 내 조건은 풀옵션 원룸, 전세로 대출이 나오는 집이어야 했다. 최근에 조건 하나가 추가되었다. 반려 동물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가족들은 이번엔 내가 지상으로 올라오길 바랐다.


회사를 관둔 이상 살고 있는 동네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번화가 인근이라 같은 가격이면 방의 크기도 작았다. 본가 인근의 부동산을 한 바퀴 돌았다.


부동산을 다니다 보면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통장 잔고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과자 이름처럼 입에 담는다.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만큼 과거 돈을 펑펑 쓰던 게 원망스러운 적도 없다. 그건 치과 의자에 눕는 것과 비슷하다. 편의점에서 야금야금 돈을 쓰는 것과 하룻밤 양치를 패스하고 자는 것.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 참 야속하게 떠오른다. 이후 집을 구하고, 충치를 치료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똑같다.


흔히들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들 한다. 나 자신이 부정당한 게 아니고 내용에 대한 거절로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러나 거절도 한두 번이어야지 지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손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다. 안 그래도 쥐어짜듯이 발걸음을 옮겼는데 의욕은 바닥을 쳤다. 부동산 어플을 봐도 집이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가면 어련히 해결해줄 것이란 근거 없는 생각이 샘솟았다.

태평하게 자고 있는 후쿠를 보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너 살 집 구하는 건데 넌 아무 생각이 없지.’

집이라도 보러 가면 차라리 나은데 조건이 맞지 않으니 볼 집도 없었다. 태평해졌다가 조급해졌다가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나는 또다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가 익숙한 부동산 아주머니는 귀찮다는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고양이 있어서 안 될 텐데? 집주인이 싫어해요. 고양이를 어떻게 해봐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엔 화가 치밀었다. 안 된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들어도고양이를 들인 것에 힐난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다음엔 절망스러웠다. 반려동물 프로그램도 많고 자동차 광고에도 강아지가 나올 정도로 반려동물 시장이 크다고 여겼는데 내가 착각한 걸까? 아니면 자기 집 있는 사람만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걸까? 무릎을 이마에 댔다. 희망고문은 희망이라도 있을 텐데 내게는 희망도 없다며 한탄했다.


며칠 뒤 참다못한 나는 언니에게 토로했다. 언니는 회사 업무에 바쁠 텐데도 여러 부동산 어플을 설치하고 집을 같이 알아봐 줬다. 다방, 직방 말고도 처음 보는 어플들이 참 많았다. 평가가 적은 어플은 깔지 않는 나와 달리 언니는 일단 다 설치를 하고 매물을 봤다. 한 번 연락이 닿은 부동산에는 우리 조건을 먼저 말해놔서 매물이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언니가 부동산에 보낸 문자, 참고하라고 내게 보내줬다. 예전에 내 방이 침수가 된 적이 있어서 언니는 반지하를 싫어한다. 매물이 없어서 반지하도 구하기로 타협했다.


언니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열심히 매물을 알아봤다. 나는 꼼꼼히 봤다고 봤지만 옵션이 없는 투룸을 선택하거나, 반지하거나, 본가에서 쉽게 갈 수 없는 집을 골랐다. 언니는 조건을 잊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부동산에 보낸 문자를 내게 주면서 이걸 그대로 보내라고 했다.

언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그날 바로 언니는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에 총 세 군데의 집을 보기로 했다. 그중 한 군데는 갑자기 집주인이 방을 쓴다고 해서 취소가 되었다. 남은 두 군데의 집을 봤고 3층의 원룸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할머니와 언니가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건 행동력과 추진력이다. 다혈질적인 기질도 있어 감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한 번 정한 건 고민하지 않고 움직인다. 반면 나는 좋게 말하면 심사숙고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굼뜬 편이다. 주변의 응원을 받아 겨우 한 걸음 떼놓고 나서도 과정 내내 나를 시험하고 의심한다.

‘될 거야, 될까? 안 되면 어떡하지?’


회사를 관둔 지 이제 8개월, 3개월 무렵이 지나고 나선 관둔 걸 후회하진 않았다. 그전까지는 실패자라는 낙인을 새겼다. 낙인이 흐려지자 이제는 다른 생각이 밀려온다.

‘글을 쓰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글을 쓰는 게 맞는 걸까?’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가 못 미더워서 의지할 거리를 찾는다. 나를 믿어줄 근거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인터넷에서 무료 운세와 사주를 찾아본다. 안 좋은 내용이 나오면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신경 쓰이고 좋은 내용이 나오면 대충 읽고 잊어버린다. 시간만 낭비한다.


언니라는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런 걸까? 결과적으로 나는 내 근거 없는 생각처럼 집을 잘 구했다. 그러나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의 무력감과 무능력함, 겁을 잔뜩 먹고 웅크리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줏대를 갖고 스스로를 믿어주는 연습, 한 번 정하면 거침없이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후 후쿠와 떨어져 하룻밤을 홀로 보내고 집 정리를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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