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후쿠 탈출기

때로는 주저 말고 박차고 일어나야 해

고양이는 외출할 일이 드물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인식표를 사놨다. 거부 반응이 너무 심하고 두 번은 내가 잘못 채워서 입에 걸린 적이 있어서 채우지 않았다. 이때도 인식표를 내동댕이치고 울었다. 이사를 몇 주 앞둔 토요일. 언니는 오늘따라 인식표를 채우자고 했다. 예전의 경험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나는 두려웠지만 다시 인식표를 채웠고 무탈없이 지나갔다.

후쿠의 인식표

처음 독립했을 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을 절반 이상 팔았다. 중고서점에 팔기를 여러 번 20만 원을 벌어서 이사비용을 마련했다. 그래도 책을 포기할 순 없었다. 가만히 두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없는 돈을 쪼개 써도 죄책감이 들지 않아 열심히 샀다. 2년 가까이 살면서 책이 조금 늘었다. 예전처럼 원목 책장을 살 순 없어서 5단 철제 책상에 이리 눕히고 저리 세웠고 부족한 것 침대 밑으로 박스 채 넣었다.

처음 책을 팔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이사라는 외부 환경에 의해 강제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다. 책을 팔고 매입가를 확인하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 이제 남은 건 책장 하나였다. 내 방이 생기고 처음 산 원목 책장은 독립할 때 폐기물 신고를 했다. 사용기간이 2년이 안 되었고 거의 새거라 그런지 내놓은 당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라져 있었다. 이번엔 당근 마켓을 이용하기로 했다. 구입 가격의 절반으로 올리자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구매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토요일 집 앞에서 거래하기 약속을 잡았다.

언니는 금요일에 우리 집으로 퇴근하고 하룻밤을 잔다. 다음 날 오전에 병원 예약이 있어 잠깐 외출하고 집에는 나와 후쿠 단둘이 있었다. 집엔 고양이가 뛰쳐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현관 앞에는 방묘문, 창문에는 방묘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갑 사정의 여의치 않아 비싼 제품은 쓰지 못하고 나는 다이소 네트망을 엮어서 만들었다.


내려와 주겠니? 문제의 책장이 거울에 반사되어 보인다.

책장을 빼내기 위해서 임시로 방묘문을 치웠다. 구매자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책장을 현관 밖으로 옮겼다. 하지만 건물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왜 아무도 없지?”

다이소 네트망을 이용한 방묘문, 팔지 못하고 버릴 책이 한켠에 쌓여 있다.


무심결에 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현관 바로 앞에 있었는지 후쿠가 뛰쳐나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반지하에 살고 현관과 건물 출입구는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패닉에 빠진 후쿠는 현관 앞에서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책장이고 뭐고 후쿠를 잡기 위해 달려 나갔다. 쏜살같이, 말 그대로 쏜살같았다. 후쿠는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 같았다. 한입 준다며 입 앞에서 숟가락을 거둬가는 것,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법이다. 건물 왼편의 쓰레기 내놓는 곳을 한 바퀴 돌았다. 자칫 잘못하면 건물 뒤로 넘어갈 수 있는데 나는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이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후쿠는 낯선 환경, 게다가 뒤에서 쫓아오는 나 때문에 계속 같은 자리를 돌더니 그대로 직진했다. 앞집의 출입문에 쿠당탕 소리와 함께 부딪쳤다. 안정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처음으로 하악질하며 나를 물어뜯는 후쿠를 부여잡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후쿠를 내려놓고 다시 나왔다.


이윽고 도착한 구매자에게 책장을 건넸다. 같이 옮겨주고 싶었지만 손이 피범벅이 되어서 골목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놀란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서 건물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최종 면접을 보기 전의 상태보다 더 손은 차가웠고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크루아상아, 왜 그래?”

“언니.”

안도감에 울먹거렸다. 병원에 다녀온 언니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언니 눈에는 얼빠진 표정에 손은 피범벅이 된 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너 피! 무슨 일이야!”

“후쿠가 탈출했어...”

"지금은? 어떻게 됐어?"

"잡아서 방에 있는데... 나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

“어머, 너 이마에도 피난다.”

“아, 이건 여드름 짠 거야.”


들어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자 언니는 홈 CCTV에 접속했다. 후쿠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걸 확인하고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후쿠는 나를 보고 평소처럼 울어댔고 캣타워에 턱턱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피를 대충 닦고는 후쿠에게 외쳤다.

“너 나가면 너도 끝장이고 나도 끝장이야!”

후쿠는 내 말을 무시하며 열심히 그루밍을 했다.

“후쿠는 끝장인 게 맞는데 넌 왜 끝장이야?”

“후쿠가 없어지면 나도 끝인 거야.”

“하긴. 그래도 인식표 해놔서 다행이긴 하다.”

나는 언니 옆에 자리를 잡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2만 원 벌려고 뭔 짓을 한지 모르겠어.”

내가 살던 곳은 원룸촌이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배달 오토바이가 많이 다녔다. 게다가 동네 터줏대감 길냥이들이 많다. 혼자서 벌벌 떨며 울고 있을 걸 상상하니 가슴에 뭔가가 뭉치는 기분이었다. 원래 길에서 울던 아이를 건져내지 않았는가. 다시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3분이 채 되지 않은 찰나에 후쿠는 회색 꼬질이가 되어버렸다. 그때 방묘문의 중요성을 체감했고, 인식표를 해서 다행이었다는 점. 무엇보다 당황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후쿠를 잡았던 것,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묘문을 치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건물 출입문을 닫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열어 놓은 걸 어쩌겠는가. 모든 것은 우연이 중첩되어 일어난 일뿐이었다. 후쿠를 되찾았다는 사실 하나에 자책은 아주 짧게 했다. 지난 일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의 후쿠를 살피기 바빴다.

생각에 짓눌리면 엉덩이보다 머리가 무거워진다. 계획을 세우다 지친다. 실천보다 미달성 표시가 더 익숙하다. 우울감에 빠졌던 어느 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의 준말)을 되뇌며 걸어가던 길이었다. 걸림돌이 없는데 길에서 넘어질 뻔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사람들, 도로 위에 수많은 자동차들 앞에 어떻게 비칠지가 먼저 생각난다. 한마디로 '쪽팔린 것'이다. 순식간에 생각은 휘발되었다.


정말 놀라면 부정적인 생각도 날아가 버린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친다. 마음이 지쳤을 때도 번쩍하고 나를 깨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넘어지는 건, 놀란 건 자의가 아니고 원치 않았지만 도움이 된다.


그렇게 나만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철퍼덕 넘어지는 게 아니라, 살짝 돌부리에 걸릴 정도로. 동전을 튕기듯 살짝 감정을 환기할 만한 것을 찾았다. 여러 가지를 시도한 결과, 난 아주 울적할 때는 아주 쓴 커피를 마신다.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어른 수저로 두 스푼을 텀블러에 담는다. 물이 끓는 소리, 텀블러에 따를 때 조르륵 내는 소리, 커피 알갱이가 서서히 녹아가고, 너무 진해 음미할 수 없는 커피 향이 코를 찌른다.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잔뜩 찡그려진다. 그렇게 감정에서 벗어나 미각에 모든 것이 집중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후쿠 탈출기는 다행히 손에만 상처를 남겼다.

초단기간 탈출기였지만 3시간 같은 3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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