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려동물과 이사하기(2)

네가 없는 밤

이삿짐을 싸는 것은 연말정산 같다. 연말정산 서류를 뽑을 때면 ‘내라면 낼 테니까 이 귀찮은 것 좀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삿짐도 마찬가지다. 엄청 귀찮다.


이런 내 마음을 고쳐먹게 하려는지 일련의 사건들이 터졌고 자연스레 짐 정리를 했다. 먼저 언니 방에서 사고가 터졌다. 천장에 고정하는 헹거가 불현듯 쓰러져버렸다. 출근을 간신히 했다는 말을 듣고는 같은 헹거를 쓰는 나도 겁이 났다. 게다가 어느샌가 후쿠는 헹거에 올라타고 옷걸이를 징검다리 삼아서 거닐고 있었다. 후쿠가 올라타서 헹거가 쓰러질 수 있고 헹거가 쓰러지면 후쿠가 다칠 수 있었다. 그렇게 헹거를 치웠고 덩달아 옷 정리를 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언니는 빠져나오기 바빴다고 한다.


며칠 뒤의 일이었다. 방에서 갑자기 시큼한 냄새가 났다. 후쿠도 코를 벌름거렸다. 알고 보니 싱크대 밑에 있던 호스가 빠져서 안쪽이 물바다가 되었다. 덕분에 싱크대 안을 (주방은 없다) 청소하고 주방용품을 모두 씻어 포장했다. 책은 이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다. 남은 건 후쿠의 살림살이였다.


짐 대신 박스에 들어간 후쿠

헹거를 치웠을 때 후쿠가 서럽게 울던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이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캣타워는 배송 왔을 때처럼 분리해야 했다. 후쿠의 눈앞에서 캣타워를 분리하는 건 너무 매몰찬 일이기에, 게다가 조립할 때 알짱대며 신경을 예민하게 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후쿠가 안 볼 때 하고 싶었다.


헹거를 치운 뒤, 찾으며 울 줄 몰랐다.


이삿날 하루 전인 2월 9일, 늦은 밤 후쿠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 모래, 간식, 장난감, 사료 등 짐이 많아서 언니가 도와줬다. 할머니는 탐탁지 않아하시면서도 화장실로 쓸 박스를 준비해놓으셨다. 언니 방에 있는 햄스터의 안전을 위해, 언니와 동생은 방을 바꿔서 잔다고 했다.


“나 간다. 가서 광란의 밤을 보낼 거야.”

“뭐할 건데?”

“편의점 떡볶이 사 먹을 거야.”

“나도!”

언니의 부러움 섞인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와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떡볶이를 샀다. 현관을 여니 이리저리 놓인 박스들이 가득했다. 텅 빈 싱크대 위에 간식을 내려놓고 캣타워를 분해했다. 모래를 치웠다. 방은 싸했지만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전자레인지에 사 온 간식을 돌렸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음식을 먹을 때면 기미상궁처럼 코를 내밀며 킁킁거리던 녀석이 없으니 마음이 시원했다. 다칠까 항상 손등으로 밀기 바빴는데 편했다. 그렇게 한 입을 먹는데 역시나 생각보다 맛이 없다.


체중이 70kg에 육박했을 때가 있었다. 퇴근 후 세 시간을 내리 밥만 먹었다. 밥과 반찬을 덜어서 먹는데 반찬이 남으면 밥을 더 덜어왔고 밥이 남으면 반찬을 더 덜어왔다. 이후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가족들이 세 번 연속으로 입퇴원을 반복한 걸 겪고,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식욕이 떨어졌다. 그만 먹고 싶은데 제어되지 않는 고충을 털어놨고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받았다. 서서히 체중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맛의 기쁨도 사라졌다. 웬만한 것을 먹어도 대부분 기대보다 맛이 없고 생각보다 별로였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벽과 바닥에서는 찬기운이 으스스하게 올라왔다. 작은 방은 적막하다 못해 삭막했다. 혼자 있어서 편할 거라고, 자유의 밤이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었다.

'기미상궁은 어딜 갔느냐!'

떡볶이도 라면도 불어 터질 때까지 다 먹지 못했다.


언니는 후쿠를 돌보기 위해 다음 날 연차를 냈다. 밤이 깊었지만 시시각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영상통화를 했다. 다음날 오후 1시에 본격적으로 이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약 세 번의 영상통화를 걸었고 처음을 제외한 두 번에서 언니가 자제하라고 했다.

“내가 후쿠 뭐하냐고 물어볼 때는 뭐라고 하더니 너도 똑같아.”


개냥이 후쿠는 분명히 어디서나 애교가 많고 잘 적응하리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우리 가족들이 다 좋아하니 더더욱 눈치도 안 보고 제 세상인 양 방을 뛰어놀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후쿠랑 놀러 갔을 때도 그랬으니까. 하룻밤,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얕잡아 봤다.


은연중 후쿠는 어디서나 잘 적응해 내가 없어도 괜찮고, 나는 후쿠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다고 여겼다. 언니가 종종 ‘이젠 좀 솔직하게 인정해! 너 후쿠 없으면 안 되잖아.’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


에고만 반복하는 나, '아고 후쿠'는 '아기 고양이 & 아름다운 고양이 후쿠'의 준말로 내가 지은 별칭이다.


카톡을 보자 눈이 뜨거워졌다. 후쿠는 울지 않았다. 나를 찾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본가에서 적응을 잘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 가족들의 눈치를 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주 주말 언니가 집에 놀러 와 얼굴을 익혔다는 사실 딱 하나였다.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을수록 마음은 이미 본가를 향해 있었다.


난 예민한 성향이지만 감정에 둔하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많이 서툴다. 작년 말 심리검사를 받고 나서야 내 모습을 보다 또렷하게 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유리거울로 보고 있었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청동거울이었다.


“크루아상 씨는 기본적으로 감정에 둔하네.”

“네?”

“그러니까 머리로는 인지는 하는데 그걸 표현하는데 많이 둔해요.”

생일 선물을 사들고 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기분,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하게 당혹스러웠다. 어떻게든 얼룩진 마음을 헹구고 싶었다.

“그럼... 표현을 못하면... 저는 글을 안 쓰는 게 나을까요?”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상상을 잘하는 편으로 나오니까. 글은 상상해서 쓰잖아요.”


안도했다. 자세한 풀이에 의하면, 나도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느끼긴 하지만 그걸 외적으로 표현하는 데 둔하다는 거였다. 머리로는 인식을 하는데 표출을 못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애정 표현을 하길 바라는 언니를 밀치며 항상 싸워왔던 과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전쟁의 끝은 중도 타협으로 끝났지만 완전히 서로를 이해한 건 아니었다. 언니에게 말하자 언니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며 납득했다.


아무튼 표현에 둔감한 나는 새벽 두 시가 지나서 침대에 혼자 눕고 나서야 알았다. 바보같이 이불까지 포장해버렸다는 사실을. 롱 패딩을 덮고 눕자 침대가, 천장이 낯설었다. 2년을 가까이 산 방인데 짐이 빠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후쿠가 없어서 그런 걸까. 맛없는 간식은 배는 부르게 해 줬지만 속을 채워주진 못했다. 잠이 오진 않았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코가 시큰거리는 걸 참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후쿠야, 정말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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