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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Aug 06. 2018

27_"아빠가 네 옆에 있을게."

“아빠는, 뚜루뚜뚜루뚜가 뚜루뚜뚜루뚜여서 좋아.”

166.

여섯 살이 된 큰 뚜루뚜의 관심사는 딱지입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고무 딱지인데, 만원에 스무 개씩 합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뛰어 놀지 않고 

카지노의 도박사들처럼 놀이터의 구석에 모여앉아 

딱지를 잃고 따는 데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딱지마다 모양과 색깔도 각양각색이라 아이들은 딱지의 수집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됩니다. 

누군가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합법적으로 강탈하기 위해 

도박과 내기의 규칙들로 딱지치기를 설계해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금지시킬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딱지는 엄연히 아이들의 세계에서 함께 놀만한 상대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신분증입니다. 


나는 큰 뚜루뚜에게 딱지를 사주며 이번에 딱지를 사주고 

올해가 다가기 전에는 딱지를 사주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말해둡니다. 

딱지 가방을 만들어주고 딱지를 잘 관리하라고 일러둡니다. 

큰 뚜루뚜는 오늘도 딱지 가방을 둘러메고 놀이터로 갑니다.      






167. 

아내가 작은 뚜루뚜를 데리고 외출을 하고, 큰 뚜루뚜는 놀이터에 나가 놀겠다고 합니다. 

간만에 집 안에 고요가 찾아듭니다. 

나는 거실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가 선잠이 듭니다. 

주중의 일상이 힘에 부쳤는지 잠은 깊고 답니다. 


얼마나 잠이 들었던 걸까요? 


나는 잠결에 인기척을 느낍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뜹니다. 

여름 해는 이미 저물어 거실이 어둑어둑합니다. 

어둑한 거실 끝에 큰 뚜루뚜가 서 있습니다. 


큰 뚜루뚜가 거기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깜짝 놀랍니다. 

큰 뚜루뚜의 얼굴이 어둠에 파묻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뜹니다. 


그런데, 큰 뚜루뚜가 조금 이상합니다. 

아이가 훌쩍거리고 있습니다. 

나는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켜고 큰 뚜루뚜에게 다가갑니다. 

몸을 낮춰 눈을 맞추고 묻습니다. 

“왜 울어?”

얼마나 울었는지, 큰 뚜루뚜의 뺨은 땟국물로 꼬질꼬질 얼룩이 져 있습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재차 묻자 큰 뚜루뚜는 슬픔이 북받치는지 울음을 앙 터뜨립니다. 


나는 아이를 안아 등을 토닥입니다. 

아이는 훌쩍이며 자신의 서러움을 쏟아냅니다. 

큰 뚜루뚜의 말인즉슨, 

가지고 나간 딱지를 놀이터의 형들에게 몽땅 따먹혔다고 합니다. 


아이는 딱지를 잃은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구경을 하다가 온듯합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릴 듯 속상하고 서러운데, 

아빠는 올해가 다 가기 전에는 딱지를 절대 사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어떡하나. 다시 딱지치기는 못하겠네,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큰 뚜루뚜의 손을 잡아 끕니다. 

“가자.”

큰 뚜루뚜가 울음을 그치고 나를 올려다봅니다. 

그 눈빛이 ‘어딜?’ 하고 묻고 있습니다. 

“딱지 사러.”

내가 말합니다. 

큰 뚜루뚜의 입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집니다. 


아이들의 놀이를 오염시키고 코 묻은 돈을 가로채는 얄팍한 상술에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큰 뚜루뚜의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쩐지 나까지 전의戰意에 불타오릅니다.      






168. 

“아빠가 두 상자 사줄게.”

나는 문방구로 차를 몰며 말합니다. 

옛날처럼 문방구가 흔하지 않아 집에서 제법 멀리까지 가야합니다. 

“아빠가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야. 대신 올해 다 갈 때까지 딱지 안 사준다는 약속, 이번에는 지킬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리고 연습 많이 한 다음에 나가. 그래야 또 안 잃지. 알았어?”

큰 뚜루뚜가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서, 다 부셔버려.”

내가 과장되게 말합니다. 

큰 뚜루뚜의 눈에서 뿅뿅 하트가 발사됩니다. 

차를 세우자말자 큰 뚜루뚜는 문방구로 뛰어 들어갑니다.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경쾌합니다.      







169.

고무딱지 두 상자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큰 뚜루뚜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합니다. 

큰 뚜루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위로해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기 위해 가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관절 가족이 무엇이겠습니까. 

조금 거창한 명명이긴 하지만, 

나는 이것을 ‘슬픔과 아픔의 연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알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 사이에 말의 길이 뚫려 있어야만 합니다. 

아이의 슬픔은 더 깊고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이 생기겠지만, 

삶에는 홀로 감당해야할 일정량의 슬픔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래야 함께 동감해줄 수 있습니다. 


부모는 조금만 방심하면 면접관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은 냉정하기에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기 위해 

냉정한 질문으로 대답을 요구해야 한다는 유혹에 빠져버립니다. 

살다보면 때때로 어떤 순간에는 그런 질문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이에게 이미 그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데, 

부모마저 면접관이 하는 질문을 계속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는 무조건적으로 연대하고,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됩니다. 

다만 너무 염려가 되어 매몰찬 말이 나왔다고 용서를 빌면 됩니다. 

그래야만 슬픔과 아픔의 연대가 가능해집니다. 


내 아이가 뛰어난 아이여서 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 아이가 모자란 아이여서 내 아이가 미운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뛰어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로잡혀 

아이의 슬픔과 아픔에 연대하지 못하는 부모는 적지 않습니다. 


뛰어난 아이가 아니어도, 

모자란 아이여도, 

아비와 어미가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기운 달이 차오르듯이 

아이의 모자람도 아이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어줄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170. 

이적의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나는 이 노랫말을 조금 바꿉니다.

“아빠는, 뚜루뚜뚜루뚜가 뚜루뚜뚜루뚜여서 좋아.”

이 작은 표현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빠는 네가 어때서 네가 좋은 게 아니야.

아빠는 네가 너여서 좋은 거야. 

 

말은 때론 어떤 주문이 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정말로 일어나게 합니다. 

시련과 고난이 닥쳤을 때에

이 주문이 위력을 발휘할 거라 

아비는 믿습니다. 


이 말은 아비의 주문입니다.   






171. 

문득 내가 좋아하는 팝송이 한 곡 떠오릅니다. 

마이클 잭슨이 부른 I’ll be there라는 곡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가가서 무엇을 하자고 말을 건네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길을 가다 뒤돌아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것. 

한 그루 나무처럼 변함없이 서 있는 것. 

‘거기 있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를 비어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먼 하늘이 검어졌다가 밝아오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비가 내렸다고 그치는 나날 속에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저 함께 울고 웃으면 됩니다. 


아이가 뒤돌아보면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선 아비가 되면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금만 아파하면 됩니다. 

화를 냈다가도 용서를 구하고, 

맞잡은 손을 놓지 않으면 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켜주면 됩니다.     

 

내 이름을 불러줘.

내가 거기 있을게. 

Just call my name 

and I'll be there


나는 마이클 형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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