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신경 mirror neuron
115.
사람의 뇌에는 ‘거울 신경mirror neuron’ 이라는 게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나 표현을
지속적으로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형상을 바라보듯이
친밀한 사람에게 자신을 이입하여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게 됩니다.
무릇 한 사람이란,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함께 웃고 싶어지고,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같이 우울해집니다.
옆에 있는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이러한 모방은 말과 행동에서 그치지 않고
감정과 사고의 패턴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최초의 습관과 행동의 방식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아비와 어미의 언행은 그만큼 영향력이 큽니다.
116.
아이들의 거울 효과mirroring는 어른에 비해 훨씬 도드라집니다.
말투에서부터 감정 표현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예민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모방합니다.
아이가 쏟아내는 거친 감정의 말을 듣고 수정을 요구하다가
나는 불현듯 깜짝 놀랍니다.
그 거친 말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거친 말을 내뱉었음에도,
나는 그 말이 내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내 말이 나왔을 때에야 나는 흠짓, 놀라 뒤로 물러섭니다.
아이는 아비 앞에 거울처럼 놓여 있습니다.
아이는 아비와 어미가 투영한 거울 속의 자신입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아이는 아비와 어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이들은 메뚜기의 더듬이처럼 예민한 촉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면 아이들은 귀신 같이 그 무언가를 알아차립니다.
그게, 어떤 감정이든, 혹은 어떤 행동이든.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래봤자 나는 결국 나여서 별 소용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럴싸한 말로는 결코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아이가 원하는 바를 아비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아이의 거친 말을 멈추게 하려면, 아비가 먼저 거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본 대로 따라합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아이의 말言은 곧 아비와 어미의 말言이고,
아이의 행동은 곧 아비와 어미의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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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뚜루뚜뚜루뚜를 데리고 대형서점에 갑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도 되지만, 책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종이상자에 담겨 택배로 배달된 책을 만나는 것과,
책들이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는 공간을 만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무엇보다 재미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놀이를 만들어냅니다.
대형서점의 검색용 컴퓨터로 책의 위치를 출력하면,
나는 뚜루뚜뚜루뚜와 알파벳과 일련번호를 바탕으로 누가 빨리 책을 찾는지 시합을 벌입니다.
출력한 종이에 적힌 책장을 찾아낸 큰 뚜루뚜와 작은 뚜루뚜의 시선이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빠르게 훑습니다.
마침내 책을 찾아내고 승자가 결정됩니다.
책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뚜루뚜뚜루뚜에게 반드시 젤리를 사줍니다.
그래서 대형서점에 가는 날은 젤리를 먹는 날이 됩니다.
나는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잠들기 전, 뚜루뚜뚜루뚜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엄청나게 두꺼운 '나니아 연대기' 통합본이
뚜루뚜뚜루뚜의 머리맡에 놓여 있습니다.
아비는 아비의 책을 읽고, 뚜루뚜뚜루뚜는 뚜루뚜뚜루뚜의 책을 읽습니다.
아내는 부지런히 아이들의 책을 공급합니다.
하지만 나는 독서만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거실 바닥에 늘어지게 누워 머리에 쿠션을 대고
아무 생각 없이 키득거리며 예능 프로그램을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이들이 나처럼 거실 바닥에 누워 리모컨을 손에 쥐고 뒹구는 걸 발견합니다.
나는 깜짝 놀랍니다.
30년쯤 어린 내가 거기 누워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뚜루뚜뚜루뚜의 나무늘보 같은 그 자태가 나를 놀래킵니다.
시속 4미터로 움직인다는 나무늘보는 게으름을 피울 때의 나를 닮아 있습니다.
뚜루뚜뚜루뚜의 모습이 나의 나태함을 반영한 것만 같아 뜨끔합니다.
비단 습관에 관한 문제만이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만약 어떤 편견이 스며들어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는 그 편견마저 흉내 낼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이에게 나쁜 습관과 편견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나의 직업관이나 종교관, 정치관 같은 것을 강요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을 뿐, 내 아이의 선택은 아닙니다.
아이의 선택은 아이의 선택대로 남겨두고, 아비는 아비의 선택에 집중하면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입이 아프지만, 그래도 해본다면,
아비라고 해서 아이의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비로서 너는 얼마든지 너의 선택을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118.
적어도 도입부의 일정기간 동안 아이는 나를 모방할 것입니다.
아비는 너무나 모자라고 부족해서 어디론가 몰래 숨고 싶습니다.
닮을까봐 두려운 면면이 너무 많습니다.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오고, 잘못된 습관들이 튀어나옵니다.
뚜루뚜 뚜루뚜는 귀신 같이 아비의 결점을 알아차리고 흉을 봅니다.
둘이 낄낄대며 합동으로 항의합니다.
형이 공세를 가하면 동생이 추임새를 넣습니다.
이럴 때 보면 정말이지 '환상의 듀오duo'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밖에서 벌어집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뚜루뚜뚜루뚜는 공개적으로 아비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누나와 매형 들은 뚜루뚜뚜루뚜의 폭로를 부추킵니다.
조카들을 키울 때, 교육문제에 나서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했던 나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웃습니다.
나는 손을 저으며 그 공격들을 제법 능숙하게 막아냅니다.
그럴 때면 뚜루뚜뚜루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2차 폭로에 나섭니다.
"아빠는 순 거짓말쟁이야. 그치? 그렇게 했으면서, 막 안 한 척하고."
큰 뚜루뚜가 치고나가면, 작은 뚜루뚜가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맞아, 맞아. 그것 말고도 또 있잖아......."
애들아, 제발.
우리 집 밖에서는 자제 좀 하자, 응?
119.
아이는 아비의 거울입니다.
아비와 어미가 잘 하고 있는데, 아이가 잘못할 리가 없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면, 부모는 아이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를 돌보며 깨닫습니다.
아이의 재능에 내가 숨어 있고,
아이의 잘못에 내가 숨어 있습니다.
실수나 잘못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비에게도, 아이에게도.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차분히 그걸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부족하고, 누구나 조금씩은 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