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무대-남사당의 여자들 2

비극작 종말

by 응시

무대에서 밀려난 여성 사당은 어떻게 됐을까.

세 갈래로 갈라졌다. 셋 모두 비극이다.


첫 번째 갈래. 남사당패에 흡수되며 밀려났다. 초기 남사당패에는 남녀가 섞여 있었으나, 점차 여성이 줄어들고 남성만의 집단이 됐다. 여성 사당은 조직에서 "퇴출"됐다. 기생 시리즈 9편 "퇴기의 삶"과 같은 구조다. 제도에서 나간 뒤 기록이 사라진다. 퇴기 된 기생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듯, 퇴출된 사당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두 번째 갈래. 매춘의 최하층으로 떨어졌다. 사당은 공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몸뚱어리밖에 없는 천민 신분으로서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았다. 해우채(解衣債)라는 말이 있었다. "치마를 벗는 값"이라는 뜻이다. 거사가 사당을 업고 손님에게 데려다주고, 일이 끝나면 다시 업고 왔다. 매춘 대가인 해우채는 사당이 아니라 거사에게 돌아갔다. 거사는 일부를 모가비에게 바쳤다. 사당은 몸을 팔았으나 그 값은 자기 것이 아니었다.


기생과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하다. 기생은 기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청의 관리를 받으며 화대를 받았다. 화대는 기방의 수입이었지만 기생에게도 일부가 돌아갔다. 사당은 들판에서 아무 보호 없이 몸을 팔았고, 대가마저 거사의 것이었다. 매춘부 중에서도 최하에 속했다. 몸을 팔아 받은 것이 "술 한 잔, 국 한 사발"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생은 무대를 빼앗기지 않았으나 자유가 없었다. 사당은 자유가 있었으나 무대를 빼앗겼다. 기생은 몸의 대가가 기방의 것이었다. 사당은 몸의 대가가 거사의 것이었다. 기생은 기방에 소속돼 있었으므로 적어도 쫓겨나기 전까지는 잠자리가 보장됐다. 사당은 소속이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세 번째 갈래. 1930년대에 완전히 사라졌다. 사당패는 걸립패, 남사당패가 없어져 갈 즈음 혼성체를 만든 적도 있었으나, 이후 기록이 끊긴다. 남사당패는 196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됐지만, 사당패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네 겹의 빼앗김이다. 무대를 빼앗겼다. 몸의 대가를 빼앗겼다. 이름을 빼앗겼다. 기록을 빼앗겼다. 기생은 한 겹(자유)을 빼앗겼으나 무대와 이름은 남았다. 사당 여성은 네 겹 모두를 빼앗겼다. 이 시리즈에서 다뤄온 천민 여성의 자리 중 가장 철저한 지움이다.


현대에서 이 구조의 유산을 본다.


남사당놀이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전승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다. 원래 여성이 만든 예술이 남성의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것은 궁 시리즈 7편 "수라간의 사람들"에서 다뤘던 구조와 같다. 왕의 밥상은 기록되지만 밥상을 만든 손은 기록되지 않는다. 남사당놀이는 문화유산으로 기록되지만, 이 놀이를 처음 만든 여성 사당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다. 결과는 남고 기원은 남지 않는다.


기생 시리즈 8편 "권번의 마지막 세대"에서도 같은 구조를 다뤘다. 기생의 기술은 "전통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기생 자신은 남지 않았다. 가곡은 무형문화유산이 됐지만, 가곡을 부르던 기생은 무형문화유산이 되지 못했다. 남사당놀이도 마찬가지다. 놀이는 유산이 됐지만, 놀이를 만든 여성은 유산이 되지 못했다.


문화적 유산과 트라우마적 유산이 동시에 존재한다.


문화적 유산은 기술이다. 줄타기, 탈놀이, 풍물. 이것들은 보존됐다.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배우는 사람이 있고, 공연하는 무대가 있다.


트라우마적 유산은 구조다. 여성이 만든 것을 남성이 가져가는 구조. 가져간 뒤 원래 주인을 잊는 구조. 잊은 뒤 "원래 남성의 것"이라고 기억하는 구조. 이 구조는 남사당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개척한 분야에 남성이 들어오고, 남성이 들어오면 여성이 밀려나고, 밀려난 뒤 "원래 남성의 분야"가 되는 패턴. 요리, 프로그래밍, 양조. 역사에서 반복되는 구조다.


처녀귀신이 죽어서야 말할 수 있었듯이, 사당패 여성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2000년대 이후 바우덕이를 재조명하는 연구와 공연이 나오고 있다. 안성에 바우덕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 뒤늦은 복원이다. 복원은 늦었지만,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 빼앗긴 무대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복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무대는 원래 여자의 것이었다. 빼앗겼다. 빼앗긴 뒤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이 바뀌면 기억이 바뀐다. 기억이 바뀌면 역사가 바뀐다.


그러나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사당"이라는 글자가 "남사당" 안에 남아 있다. 지워졌으나 흔적은 남았다. 이름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