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은 왜 처녀인가2

죽어서도 이름이 상태를 가리키다

by 응시

처녀귀신은 왜 처녀인가.

한 가지 이유가 아니다. 성리학이 혼인을 유일한 경로로 만들었고, 종법이 미혼의 죽음을 처리할 수 없게 만들었고, 전쟁이 대량의 죽음을 만들었고, 국가가 죽음을 미화했고, 가난이 혼인을 가로막았고, 무속이 귀신을 풀어주는 체계를 유지했고, 사회가 살아 있는 여성의 목소리를 막았다. 일곱 겹의 구조가 겹쳐서 처녀귀신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처녀귀신의 미완은 누구의 미완인가. 혼인하지 못한 것은 처녀의 잘못인가. 대부분은 아니다. 가난해서, 전쟁 때문에, 병 때문에, 또는 아무 이유 없이 혼인하지 못하고 죽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그런데 그 미완이 개인에게 귀속된다. "처녀"귀신. 이름이 상태를 가리킨다. 혼인하지 못한 상태. 이 상태가 이름이 되고, 이름이 정체성이 된다.


기생에게 기명이 붙었듯이, 죽은 여성에게 "처녀"가 붙었다. 살아서도 이름이 상태를 가리켰고, 죽어서도 이름이 상태를 가리켰다.


현대 심리학에서 '미완의 과업(unfinished business)'이라는 개념이 있다. 완결되지 못한 경험은 심리적 긴장을 만든다. 이 긴장은 완결될 때까지 계속된다. 처녀귀신은 미완의 과업이 귀신의 형태를 입은 것이다. 살아서 완결하지 못한 것을 죽어서도 완결하려는 것.


여기서 이 시리즈의 주제와 만난다. 처녀귀신과 천민 여성.


가장 많이 처녀귀신이 된 사람이 누구였을까. 양반 여성은 혼인이 보장됐다. 가문끼리 정했다. 상민 여성도 대체로 혼인했다. 천민 여성은 달랐다. 혼수를 마련할 돈이 없었고, 혼인 상대가 같은 천민으로 제한됐고, 역병과 기근에 가장 먼저 죽었다. 혼인하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천민 여성이었다.


그런데 처녀귀신 이야기에서 귀신의 신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처녀"라고만 한다. 천민이었는지, 상민이었는지, 양반이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신분이 지워지고 상태만 남는다. 살아서도 이름이 없었던 사람이 죽어서도 신분이 지워진다. 1편에서 다뤘던 "낙인의 내면화"가 죽음 이후에도 작동하는 것이다.


천민 여성의 트라우마가 처녀귀신에 반영되는 구조는 여러 층위다.


이중 부재. 천민 여성은 살아서 사회적 자리가 없었다. 1편에서 "울타리도 담도 없는 존재"라고 했다. 죽어서도 자리가 없다. 시가에 편입되지 못했으므로 제사를 받을 수 없고, 친정에서도 미혼 딸의 제사를 모시기 어렵다. 살아서도 자리 없고, 죽어서도 자리 없는 존재. 처녀귀신이 "떠도는" 이유다. 정착할 곳이 없으니까.


유일한 발화. 천민 여성은 궁녀보다 더 철저하게 침묵당한 사람이다. 궁녀는 적어도 궁이라는 제도 안에 있었다. 천민 여성은 제도 바깥에 있었으므로 침묵할 제도조차 없었다. 존재 자체가 기록되지 않았다. 귀신이 되는 것은 이 여성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살아서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죽어서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구조의 전가. 혼인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가난, 신분 제한, 전쟁, 역병. 그런데 귀신이 되면 그 미완이 개인에게 귀속된다. 구조가 만든 문제를 개인이 짊어지는 것. 8편 "백정의 아내"에서 다뤘던 연좌된 낙인과 같은 구조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벌받는 것. 천민이라서 혼인하지 못했는데, 혼인하지 못했으므로 귀신이 되는 것.


공포의 전치. 사회가 천민 여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두려워한 것은 자기가 만든 구조의 결과다. 천민 제도를 만들고, 여성을 억압하고, 혼인을 유일한 경로로 만들었다. 이 구조가 처녀귀신을 만들었다. 처녀귀신에 대한 공포는 사실 자기가 만든 구조에 대한 공포다. 그런데 이 공포를 "귀신이 무섭다"로 전치한다. 구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귀신이 무서운 것으로 바꾼다. 원인에서 결과로 공포의 대상이 옮겨간다.


세대 간 전달. 9편에서 한의 세대 간 트라우마를 다룬다. 처녀귀신 이야기 자체가 세대 간 트라우마의 전달 매체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처녀로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말한다. 이 말 안에 수백 년간 천민 여성이 겪은 구조적 억압이 압축돼 있다. 이야기의 형태로 트라우마가 전달된다. 구조는 사라져도 이야기는 남는다. 이야기가 남으면 공포도 남는다.


처녀귀신은 천민 여성의 삶이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일 수 있다. 이름이 없었으므로 기록이 없다. 기록이 없으므로 역사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남았다. 귀신의 형태로.


그리고 이 구조는 조선 후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 한국 공포영화에서 처녀귀신이 대거 부활했다. 근대화를 추진하며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밀어넣던 시기였다. 2000년대 《여고괴담》에서 다시 나타났다. 여성 억압이 강화되는 시기마다 처녀귀신은 돌아온다. 억압이 만든 귀신이므로, 억압이 있는 곳에 귀신이 있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귀신을 만든 구조가 무서운 것이다. 죽어서도 이름이 상태를 가리키는 구조가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