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이름이 상태를 가리키다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처녀귀신이다.
긴 머리, 흰 옷, 창백한 얼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이미지를 안다. 공포영화의 단골이고,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다. 처녀귀신은 한국 공포 문화의 원형이다.
그런데 왜 처녀인가.
왜 총각귀신이 아니라 처녀귀신인가. 서양의 대표적 괴물 —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좀비 — 은 대부분 남성이다. 한국에는 처녀귀신, 과부귀신, 열녀귀신, 구미호. 여자 귀신 일색이다. 총각귀신(몽달귀신)도 있지만 처녀귀신의 존재감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처녀"에 붙는 공포가 있다. 이 공포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이다.
첫 번째 겹. 성리학이 만든 구조.
조선에서 혼인하지 않고 죽은 여성은 문제적 존재였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여성의 삶은 혼인으로 완성됐다. 아버지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가는 것.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 여성에게 혼례란 성인식과 동일시됐다. 혼인하지 못한 여성은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존재였다. 이 경로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 죽음은 "미완"이 됐다.
그런데 이 구조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만 해도 처녀가 한을 품고 귀신이 됐다는 민담이 많지 않았다. 처녀귀신 이야기가 폭증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주자학이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다.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남녀의 역할과 지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내외법이 강화됐다. 혼인이 여성의 유일한 사회적 존재 방식이 되면서, 혼인하지 못한 죽음이 "풀리지 않는 한"이 된 것이다.
두 번째 겹. 종법이 만든 구조.
조선 후기에 장자상속제와 부계 중심 종법이 강화됐다. 이 구조에서 여성은 혼인을 통해 시가에 편입돼야 비로소 사회적 자리를 얻었다. 혼인하지 못한 여성은 시가에 편입되지 못했으므로 조상 제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친정에서도 출가하지 않은 딸의 제사를 별도로 모시기 어려웠다. 제사를 받지 못한 영혼은 떠도는 영혼이 된다. 종법 구조 자체가 미혼 여성의 죽음을 "처리할 수 없는 죽음"으로 만든 것이다.
처녀귀신을 달래는 방법이 있었다. 영혼결혼식이다. 죽은 처녀와 죽은 총각의 위패를 맞대어 혼인시키는 의례. 살아서 하지 못한 혼인을 죽어서 해주는 것이다. 이 의례가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미혼 여성의 죽음을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처녀가 죽으면 시신에 남성의 옷을 입혀 묻거나, 남성 성기를 강조한 짚 인형을 관에 넣기도 했다. 죽어서나마 남성과 접촉한 것을 위안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불안하면 관 주위에 가시나무를 넣어 귀신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았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일까, 산 사람을 위한 것일까. 기생 시리즈 10편에서 "기생을 아름답다고 부를 때 우리가 가리는 것"을 다뤘다. 처녀귀신에게도 같은 구조가 있다. 산 사람이 편해지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다.
세 번째 겹. 전쟁이 만든 구조.
처녀귀신 이야기가 폭증한 시기는 전란과 역병이 겹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민간인 여성이 대규모로 죽거나 납치됐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환향녀)은 "더럽혀진 여자"로 배척받았다. 전쟁에서 죽은 미혼 여성, 납치된 여성, 정조를 지키려다 죽은 여성. 이 모든 경우가 처녀귀신 서사의 원료가 됐다.
전쟁은 남성 인구를 줄였다. 남성이 줄면 혼인할 수 없는 여성이 늘어난다. 혼인하지 못하고 죽는 여성이 늘어난다. 처녀귀신이 늘어난다. 전쟁이 직접 만든 귀신이다.
네 번째 겹. 국가가 만든 구조.
조선 후기에 열녀 이데올로기가 국가 차원에서 장려됐다. 정절을 지키다 죽은 여성에게 정려를 내리고, 마을에 열녀문을 세웠다. "정절을 위해 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메시지였다. 국가가 여성의 죽음을 미화했다. 미화된 죽음이 귀신 이야기로 돌아왔다. 국가가 만든 죽음이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 역설이다.
다섯 번째 겹. 가난이 만든 구조.
처녀귀신이 많다는 것은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여성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인하지 못한 이유가 성리학적 억압만은 아니다. 혼수를 마련할 수 없어서. 천민이라 혼인 상대가 제한돼서. 역병으로 죽어서. 조선 후기는 이 모든 것이 겹친 시기다. 1편에서 다뤘던 천민 여성의 자리가 여기서 다시 보인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여성이 혼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죽어서 처녀귀신이 될 가능성도 가장 높았다.
여섯 번째 겹. 무속이 만든 구조.
한국의 귀신관은 서양이나 일본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귀신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나타난다. 한을 풀면 떠난다. 일본의 귀신은 나타나는 데 이유가 없다. 불특정 다수를 공격한다. 한국의 귀신은 자기 사연을 밝히고 한을 풀기 위해 나타난다. 사연이 밝혀지면 떠난다.
무속에서 귀신은 "풀어줘야 할 존재"다. 굿을 통해 한을 풀어주면 귀신이 떠난다. 이 구조는 성리학이 억압하고, 무속이 풀어주는 상보적 체계다. 성리학이 강해질수록 억압이 깊어지고, 억압이 깊어질수록 무속이 풀어줘야 할 귀신이 많아진다. 4편에서 다뤘던 "남의 슬픔을 대신 우는 직업"이 여기와 연결된다.
일곱 번째 겹. 가장 깊은 겹.
살아서 말할 수 없었던 여성이 죽어서야 비로소 말하는 구조.
전근대 사회의 제도와 이념 속에서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은 귀신이 돼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이 가둔 상처로 가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공포의 목소리로 여겼다.
궁 시리즈 2편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궁녀의 침묵을 다뤘다. 처녀귀신은 그 침묵의 극단적 형태다. 살아서 침묵하고, 죽어서 소리를 낸다. 사회가 그 소리를 "공포"로 분류한다. 공포로 분류하면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 무서우니까 피하면 된다. 귀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