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오는 순간

고통이 의미가 되는 순간

by 응시

신이 오기 전에 고통이 먼저 왔다.

2편에서 신병의 증상을 다뤘다. 환청, 환시, 불면, 식욕 상실. 이 증상이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때로는 몇 년 계속됐다. 그동안 일상이 무너졌다. 밥을 짓지 못했다.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 남편에게 버림받는 경우도 있었다. 신병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을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신을 받아들인다.


내림굿이 열린다. 무당이 될 사람이 굿판에 선다. 북이 울리고, 징이 울리고, 꽹과리가 울린다. 소리가 몸을 감싼다.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몸이 따라 움직인다. 떨린다. 뛴다. 쓰러진다. 일어난다. 다시 뛴다.


이 순간에 무엇이 일어나는 것일까.


무속의 언어로는 신이 내려오는 것이다. 신이 몸에 들어오면 몸이 신의 것이 된다. 무당은 신의 그릇이다. 그릇은 자기를 비워야 채워진다. 자기를 비우는 순간이 신이 오는 순간이다.


심리학의 언어로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극단적 고통이 오래 지속되면, 의식이 일상적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는 무너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환되는 것이다. 무너지면 병이 된다. 전환되면 다른 형태의 의식 상태가 된다.


내림굿의 순간은 이 전환의 순간일 수 있다.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나는 아프다"에서 "나에게 신이 왔다"로. 같은 증상이 다른 이름을 얻는 순간. 환청이 "신의 목소리"가 된다. 환시가 "신의 계시"가 된다. 증상이 능력이 된다.


현대 심리학에서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개념이 있다. 트라우마를 겪은 뒤 오히려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현상이다.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 고통에 의미가 있다"는 감각이 생기면,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신내림이 외상 후 성장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다.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구조적 유사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극단적 고통 → 전환 → 새로운 의미 → 새로운 역할. 이 순서가 외상 후 성장에도, 신내림에도 나타난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외상 후 성장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신내림은 공동체의 인정이 따른다. 혼자 "나에게 신이 왔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림굿이 열리고, 기존 무당이 인정하고, 마을이 받아들여야 한다. 공동체가 "이 사람에게 신이 왔다"라고 승인해야 무당이 된다.


고통이 개인의 것에서 공동체의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것이 신이 오는 순간의 핵심일 수 있다. 혼자 앓던 고통을 공동체가 인정해 주는 순간. "네 고통은 의미가 있다"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순간.


천민 여성에게 이 순간이 얼마나 절실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아무도 고통을 인정해주지 않던 사람에게, "네 고통에 신이 들어 있다"는 말이 닿았을 때.


신이 온 것인지, 인정이 온 것인지. 구분이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가 동시에 온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