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들고 몸이 받아들인 이름
조선에는 천한 사람이 있었다.
노비, 백정, 무당, 광대, 기생. 이들을 천민(賤民)이라 불렀다. 천(賤)은 "천하다"는 뜻이다. 낮다, 더럽다, 가치 없다. 이 글자가 사람에게 붙었다.
천한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법이 정했다. 《경국대전》에 신분이 규정돼 있었다. 양인(良人)과 천인(賤人). 태어날 때 정해졌다. 어머니가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었다. 종모법(從母法). 아버지가 양반이어도 어머니가 노비이면 자식은 노비였다. 선택한 적 없는 이름이 태어나는 순간 붙었다.
법이 정했으나, 법만으로는 부족했다.
법은 신분을 구분했다. 그러나 구분이 멸시가 되려면 법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저 사람은 천민이다"라는 구분과 "저 사람은 천하다"라는 멸시는 다르다. 구분은 제도이고, 멸시는 인식이다. 제도가 인식을 만들었다. 수백 년간 같은 구분이 반복되면, 구분이 당연해지고, 당연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자연스러운 것은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원래 천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인식은 양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천민 자신에게도 있었다. 여기서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것이 생긴다.
현대 심리학에서 '낙인의 내면화(internalized stigma)'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가 붙인 부정적 이름을 당사자가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나는 천하다"라고 사회가 말한다. 처음에는 부당하게 느낀다. 그러나 수십 년, 수백 년 반복되면 "나는 원래 천하다"가 된다. 외부의 판단이 내부의 신념이 된다.
낙인이 내면화되면 저항이 사라진다. 부당하다고 느끼면 저항할 수 있다. 당연하다고 느끼면 저항할 이유가 없다. 조선의 천민 제도가 500년간 유지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물리적 억압만으로 500년을 유지할 수 없다. 억압받는 사람이 억압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제도는 완성된다.
천민 여성은 이 낙인 위에 하나가 더 겹쳤다.
천민이면서 여성. 신분의 낙인과 성별의 낙인이 동시에 작동했다. 양반 여성도 억압받았다. 집 안에 갇혔고, 교육이 제한됐고, 발언권이 없었다. 그러나 양반 여성에게는 적어도 신분의 보호가 있었다. 천민 여성에게는 신분의 보호도, 성별의 보호도 없었다.
보호가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당할 수 있는 상태가 일상이면, 사람의 안에서 무엇이 일어날까.
경계가 사라진다.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의 경계. 자기가 거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 이 경계가 흐려지면 자기 자신의 윤곽도 흐려진다. "나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감각이 사라진다.
기생 시리즈에서 기생의 경계를 다뤘다. 궁 시리즈에서 궁녀의 경계를 다뤘다. 천민 여성에게는 경계 자체가 없었다. 기생에게는 기방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궁녀에게는 궁이라는 담이 있었다. 천민 여성에게는 울타리도 담도 없었다. 보호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그것이 천민 여성의 자리였다.
이 시리즈는 그 자리를 본다. 울타리 없는 자리. 담 없는 자리. 이름 없는 자리.
기록은 거의 없다. 기생보다 적고, 궁녀보다 적다. 흔적만 있다. 흔적에서 읽는 수밖에 없다.
천한 것은 누가 정했을까. 법이 정하고, 사회가 반복하고, 당사자가 받아들였다. 세 단계가 갖춰지면 낙인은 완성된다. 완성된 낙인은 보이지 않는다. 공기처럼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에 질문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다.